''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자''는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 불과 몇년 전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이 디지털 경쟁에서 일본을 앞서고 있다는 보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초고속망 구축에서 우리가 앞선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보다 많은 비율의 네티즌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국제도메인 등록순위도 우리가 계속 앞서 있다.

주식시장 거래의 절반이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일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금년 4월 홍콩에 아시아지국을 개설한 인터넷 관련 조사기관인 네트밸류(Netvalue)가 9월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인터넷을 빈번히 이용하는 고객 가운데 싱가포르 홍콩 대만에서는 2년 이상 사용자가 각각 63%,50%,52%이지만 한국에서는 불과 24%에 불과하며 6개월도 안된 사람이 41%로 가장 많다.

이것은 최근 한국에서 인터넷 열풍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난 몇년 사이 우리사회에 일고 있는 인터넷열풍은 과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은 19세기 중엽,비슷한 시기에 서구문명의 첫번째 도전에 부딪쳤다.

그런데 두 나라의 반응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일본은 자신의 전통을 지키면서 서구의 도전에 긍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근대화를 시작한 반면,한국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쇄국노선을 걸으면서,결국 일본의 식민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1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서구문명의 두번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지식정보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새로운 인터넷 경쟁에서 우리가 진정 일본을 앞서 갈 수 있다면,그 문명사적 함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텟이 기업의 조직방식과 생산성 또는 인간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어떤 기술혁신보다 더 폭넓고 심대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일본이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를 만큼 만성적인 슬럼프에 빠진 것도 바로 지식정보 혁명에 일본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때문에 최근 일본 ''모리''내각은 IT분야의 획기적 중흥으로 5년 안에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표명한 바 있다.

4대 중점과제로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전자상거래 활성화,전자정부 실현,IT관련 인재육성을 제시했고 이를 위해 ''IT기본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국력과 저력,차분한 준비체질,추월경쟁에 능숙한 경험,튼튼한 제조업 기반 등을 고려할 때,일본이 일단 IT산업쪽으로 방향을 틀면 결과도 상당할 것이다.

때문에 몇가지 단순지표에 의해 우리가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우쭐대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무엇보다 금융 기업 노동시장 등 경제 구조개혁의 조속한 완수가 시급한 일이다.

아울러 기술과 문화의 유기적 결합으로 인터넷 시대를 개성있게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일본 특유의 네트워크 전통,신용문화의 틀 안에서 공동체주의적 인터넷 문화를 발전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특징과 비교우위를 보일 것인가.

나의 가설은 우리가 일본인보다 인터넷 수용에 훨씬 더 대담한 것은 일본에 약한 독특한 참여문화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식을 통한 자기성취욕구,남보다 앞서려는, 적어도 뒤지지는 않으려는 경쟁심이 우리만큼 강한 민족은 드물다.

특히 젊은 세대는 모든 기성 권위에 도전적이며,사이버 공간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해방의 여정을 제공한다.

요컨대,일본보다 강한 개인의 창의적 도전심과 시민사회의 전통이 가정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인터넷열풍을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일본을 능가하는 우리의 잠재력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과거 우리 선조는 서구의 도전앞에서 폐쇄적 정체성이 너무 강해 발전의 기회를 놓쳤지만,이제는 참여문화를 요구하는 인터넷시대가 열리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서구문화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