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끼고 월가에서 윗쪽으로 열 블록쯤 떨어져 있는 펄 스트리트.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골목 500번지에 미 연방법원 뉴욕시 남부지법이 있다.

60여명의 판사가 근무하는 이 법원에서는 하루 1백건이 넘는 재판이 열린다.

강력 사건 등 형사 소송도 적지 않지만,주종을 이루는 것은 경제 송사다.

이 법원에서 3년째 근무중인 존 마틴 판사는 "시 당국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형사 사건은 줄어든 반면 금융-증권 거래 등을 둘러싼 분쟁은 크게 늘고 있다"며 "월가가 그만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증시 관계자들도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레이몬드 헤네시 감독법규 담당 부사장은 "상장기업이 3천개가 넘고 하루 거래되는 주식수가 10억주를 넘다보니 증시에서는 매일 갖가지 사고가 빚어진다"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격"이라고 푸념한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는 월가에서 자행되는 각종 증권 사기 관련 ''조직 범죄''가 단골로 다뤄진다.

거래소 딜러들의 주가 조작 시비에서부터 펀드 매니저와 브로커들간 거액의 리베이트 거래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뉴스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온다.

때로는 회계 보고서의 신뢰성과 관련해 월가의 대형 회계법인들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월가를 최소한 다른 나라의 증권가와 구분짓는 것이 한가지 있다.

''부정이 드러나면 확실하게 응징을 받는다''는 점이다.

적당히 부풀린 기업 공시나 가공 수치를 집어 넣은 경영 보고서,이런 것을 알고도 모른채 ''적정 의견''을 서슴없이 써넣어 선의의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회계법인 등의 행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최근 관광 지주회사인 센던트사와 유력 회계법인인 언스트 앤드 영(E&Y)사가 부정공시혐의로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해 배상을 하게 된 사건은 월가의 이런 자정(自淨)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센던트사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28억달러를 배상키로 한 데 이어 E&Y도 별도로 3억3천5백만달러를 물어내게 됐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라마다 인 호텔과 아비스 렌터카 등의 지주 회사인 센던트사는 지난 97년말 통신판매회사였던 CUC 인터내셔널을 흡수 합병했다.

센던트는 합병 후 CUC 인터내셔널사의 회계 보고서를 자체 감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가 지난 95~97년 3년동안 이익을 6억4천만달러어치 과대 계상해 공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합병 협상에서 값을 최대한 올려받기 위해 ''꼼수''를 둔 것이었다.

센던트사는 이를 증시에 공시했다.

즉각적인 시장 반응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뉴욕주와 뉴욕시,캘리포니아주의 공무원 연금기금 등 대형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으로 입은 막대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걸었다.

CUC 인터내셔널을 승계한 센던트사측은 투자자들에게 미국 증권가 사상 최고액인 28억달러를 배상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기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 이상을 독립적인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등 경영 구조까지 쇄신해야 했다.

주가 부정의 책임을 묻는 화살은 당시 CUC사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E&Y측에도 돌아갔다.

E&Y 역시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로 인한 손해배상액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3억3천5백만달러를 투자자들에게 지급키로 합의했다.

E&Y의 ''불운''은 최근 회계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관행이 부른 자업자득이라는 게 월가 사람들의 평가다.

이 회사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들은 요즘 인건비가 낮은 초임 회계사들을 대거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마진을 높이겠다는 계산에서라고 한다.

눈을 부릅뜨고 증시를 지켜보고 있는 시장 참가자들이 그런 ''부실''에 엄한 추궁의 매를 든 셈이다.

월가에서는 증시 부정행위와 관련한 뉴스가 하루에도 수십,수백가지씩 터져 나오고 있지만 뉴스의 대부분이 ''징악(懲惡)''의 이야기로 귀납된다.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일체의 일탈 행위에 대해 ''필벌(必罰)''의 제재를 가하는 것,그것이 월가를 세계 증시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바탕 힘이라고 월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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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한상춘 전문위원
<>이학영 차장(국제부
<>육동인 특파원(뉴욕)
<>강은구(영상정보부)
<>김홍열(증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