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길거리 리어카에서 나오는 노래에 걸음을 멈춘적이 있었다.

폭포처럼 몰아치는 선율과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폭발적인 보컬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오랫만에 괜찮은 가수가 나왔구나"란 생각에 반가웠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중성적인 음색으로 보아 남자이겠거니 짐작했다.

하지만 그 노래의 주인공이 공연장과 방송에 등장했을 때 이런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걸 알 수 있었다.

서문탁(22).1m70cm의 늘씬한 키와 선 굵은 외모.언뜻 보면 영락없는 남자이지만 그는 네자매 중 셋째인 "확실한"여가수다.

"목소리와 외모 때문에 남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덕을 본적이 많았어요. 그만큼 저를 확실히 알릴 수 있었으니까요"

1집 "아수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문탁은 최근 내놓은 2집에서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굵고 둔탁한 보컬을 부드러운 창법으로 바꿨다.

투박해 보이는 남성적인 외모도 화사한 여성적인 스타일로 다듬었다.

"너무 강하면 거부감을 줄 것 같아 이번에는 편안하면서도 여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어요.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메이크업에도 신경을 썼어요. 몸무게도 줄였구요"

음악 역시 달라졌다.

1집에 비해 사운드를 보강하고 멜로디를 강조해 한층 성숙해진 느낌을 준다.

끈적끈적한 블루스록에서부터 기계음과 목소리를 적절히 조화시킨 사이키델릭록,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모던록,전형적인 록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타이틀곡 "사슬"은 포크 선율이 가미된 모던록 계열의 노래.이별후에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을 담았다.

가느다란 떨림으로 시작해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보컬이 매력적이다.

기타연주가 일품인 "시찌프스"와 직접 작사한 "비익조""혼자 가는 여행",스피드 메탈풍의 "질러!탁"도 호소력있게 다가온다.

서문탁은 가수 외에도 국내 3명밖에 없는 여자 아마추어 복싱 선수자격증 소유자 가운데 1명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노래 연습을 하면서 힘과 폐활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복싱을 하면서부터 발성 연습도 잘되고 기분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내친 김에 테스트를 받아 자격증을 땄어요"

고려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그동안 야채장수,식당 종업원,학원강사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런 경험이 담겨서인지 그의 노래는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마력이 있다.

"여성 로커는 상업성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멋지게 데뷔한 그가 어떤 비상을 할 지 주목된다.

글=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