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어느날''(캔버스에 유채,97X162㎝) 은 천재화가 이인성(李仁星,1912∼1950)이 1934년 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특선의 영광을 안은 대작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저고리를 벗은 여성과 들풀의 붉고 노란 색조가 강렬하게 대비,인간과 자연의 건강미를 보여주는 그림.

이인성이 도쿄에서 고학하고 있을 때 현지에서 그려 보낸 작품으로 작가의 서명과 제작연도가 뚜렷하게 적혀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햇살을 받아 붉게 드러나는 흙,반라(半裸)의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해 향토적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해바라기 옥수수 사과나무 등의 생명력 넘치는 묘사가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자연과 때묻지 않은 인간의 세계를 그리려 한 점은 고갱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은 현실 풍경이라기보다는 향토색을 나타내기 위해 작위성이 가미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라의 여성이 한 손으로는 바구니를 들고,다른 한 손은 등 뒤로 돌려 꽃을 꺾으려는 표현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또한 그가 유화라는 재료와 기법을 한창 익히고 있을 때의 작품이어서 후기 유화와 비교해보면 미숙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인성은 대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그림을 배웠다.

그렇지만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서 6회 연속 특선을 따내는 기록을 세웠다.

최고상을 받고 추천작가가 되어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당대 제일의 화가로 각광받기도 했다.

1935년 3년간의 고학을 끝내고 일본에서 금의환향한 그는 이듬해 대구에서 의사(남산병원) 딸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인성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 초에 ''이인성 양화연구소''를 열어 후진양성에도 적극 나섰으나 부인이 요절,행복한 날은 그리 길지 못했다.

이인성은 6·25전쟁 와중인 1950년 경찰관과 시비를 벌이다 총기 사고로 불행하게 사망했다.

이 화백은 말술도 삼가지 않는 주호(酒豪)였다.

사고가 나던 날도 술이 거나해서 집에 들어가다가 검문소에 서 있던 순경에게 검문을 당했다.

이 화백은 검문을 당하는 게 싫었던지 "천하의 이인성을 모르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경찰관의 명찰을 잡아뗐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경관이 총을 들고 뒤쫓아와 이 화백을 불러냈다.

말리는 아내를 물리치고 방에서 나와 신발 끈을 매는데 쾅하고 총이 발사된 것이다.

천재화가 이인성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당시 이 사고를 둘러싸고 "으름장만 놓으려고 했는데 실수로 그런 것"이란 의견과 "의도적으로 조준해서 쏜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등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올해는 이인성 작고 50주기를 맞는 해다.

대구시에서는 ''이인성미술상''을 제정하고,호암미술관은 11월에 그의 회고전을 기획하고 있다.

월간 art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