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시각차는 극명하다.

정부는 경기 정점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이제야 본격적인 상승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기관들은 경기정점이 임박했거나 어쩌면 이미 지났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하강 시기를 내년 하반기 이후로 생각했던 연구기관장들중 상당수는 올해나 내년초라고 생각을 바꾸고 있다.

일부는 경기가 지난 3.4분기에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있다.

◆ 정부의 시각 =정부는 경기 상승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8월 산업활동 동향통계를 보면 산업생산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4.1% 증가했고 수출출하는 39.7%나 늘어났으며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41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모든 지표가 완만한 경기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기사이클도 근거로 제시했다.

"현재 우리 경기는 정부 수립 후 7번째 순환기에 속해 있다. 과거 6차례 순환에서 한 순환기당 평균 5년이 걸렸다. 상승에 평균 3년, 하강에 평균 2년이었다. 이번 순환기는 지난 98년8월을 저점으로 시작됐다. 따라서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상승을 지속할 것이다"

정부도 체감경기가 나쁘다는데 대해선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기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간.지역간.계층간 불균형 문제로 해석한다.

즉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등 소수 주력산업은 성장률이 폭발적이지만 그외 다수 전통산업은 침체돼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경기가 차갑게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체감경기를 좋게 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런 불균형 해소를 꼽았다.

그러나 전통산업을 부양하는 정책은 지양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간 불균형은 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고 사양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금융.기업구조조정은 철저히 하라면서 사양산업을 살리라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도 이런 판단에 대체로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경기둔화 사이클의 초기단계로 간주할만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경기가 정점에서 수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하강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체감경기가 나쁘다고 사양산업을 부양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는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많은 연구기관들은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여러 가지 경기정점 예측방법을 써본 결과 이번 순환기의 경기 정점은 지난 3.4분기에 이미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내년 경기와 관련해 "30% 미만의 가능성이지만 수출이 부진하고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대될 경우 급격한 경기 하강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일본처럼 장기침체로 가지 않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어려운 국면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좌 원장은 "경기가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전분기와 대비해 하강할 시점이 온 것 같다"며 "무엇보다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은 경기가 지표상으론 괜찮다는 말에 "일부 잘되는 곳만 잘되고 나머지는 안되는 상황인데 평균수치만 갖고 잘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경기가 내년 중반 이후에나 하강할 것으로 봤는데 최근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경제주체가 늘고 있고 자금경색 현상도 풀리지 않아 이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구조조정 부진이 지금 우리 경제를 꼬이게 하는 주범"이라면서 "성장률 등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물가가 4∼5%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구조조정의 대가라면 환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관치 포스코경영연구소장은 경기양극화와 소비위축이 심화되고 있다며 "경기정점을 내년 하반기로 예측했었는데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완만한 하강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대책으로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창업을 자극하고 권장해야 한다"면서 "개인의 창의를 일으키는 쪽으로 각종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