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오일(쌍용정유의 새 이름)은 지난7월 한 주유소에서 여러 회사의 제품을 팔수 있도록 하는 "복수 폴사인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산업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문을 제출했다.

시장을 안정적으로 나눠갖고 있던 4대 정유사의 암묵적인 합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절차상으로도 석유협회를 통해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던 관행을 깼다.

지난연말 쌍용측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사가 단독 대주주로 부상한 S오일은 정유업계의 공동전선을 이탈,각 분야에서 독자노선을 펼쳐 다른 정유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외국 기업이 경영권을 장악했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올들어서 S-Oil은 이익 창출과 고율 배당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는 업계의 관행을 깨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정유업계에서는 SK(주) LG정유 현대정유(인천정유 포함) S-Oil 등 4사 가운데 SK(주)를 제외한 3개사가 외국인이 단일 혹은 공동 대주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정유는 50%의 지분을 보유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IPIC사가,S-Oil은 35%의 지분을 보유한 아람코사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LG정유는 칼텍스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 86년부터 LG측이 이사회 의장을 단독으로 맡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정유업계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등 서구식 경영행태도 정착돼가고 있다.

현대정유는 지난해 10월 주유소에 내걸 새로운 간판 디자인을 정했다.

그러나 주유소의 간판을 모두 교체하는 데 대한 이사회 승인을 받은 것은 올해 8월이나 돼서였다.

일반적인 국내기업 같았으면 최고경영자가 결정하고 난 뒤 이사회에서의 짧은 토론을 거쳐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IPIC측 이사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끝에 승인 결정을 내렸다.

일부 주유소의 시범실시와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의 소비자반응 조사 등 여러가지 객관적인 검증작업도 거쳤다.

수백억원이나 들어가는 사업을 가볍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게 IPIC측 이사들의 주장이었다.

S-Oil도 올초부터 e비즈니스 관련 신사업진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사업전략 초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신속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는 얘기다.

SK(주)가 마케팅 컴퍼니로의 변신 전략을 수립하고 진작부터 인터넷과 바이오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정래 현대정유 전무는 "외자유치 후에는 결론은 같을지라도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절차가 중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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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혁 현대정유 사장은 "외자유치후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지만 경영이 투명해지는등 확실히 장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비산유국 입장에서 산유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얻어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했다는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정유의 대주주인 IPIC는 최근 유가가 단기 급등하자 현대정유에 대한 장기공급계약물량을 늘렸다.

석유시장에 대한 고급정보와 경영정보를 교환할수 있다는게 정 사장이 지적하는 두번째 장점.

OPEC(석유수출국기구)회의에 참가하는 UAE(아랍에미리트)의 국영석유회사간부 등도 이사회에 포함돼 있어 산유국들의 분위기를 전달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기술분야 임직원들이 IPIC가 투자한 스페인 등의 정유회사들을 방문,서로 경험을 교환했다.

정 사장은 또 "국제적으로 신인도가 높은 대주주가 있음으로 해서 국내금융시장이 경색돼도 해외에서 자금을 쉽게 조달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자유치당시 IPIC측이 국내금융기관들로부터 문서상의 보장을 받겠다고 해 국내금융관행을 설명하느라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몽혁 사장은 "외자유치는 국제결혼이나 마찬가지"라며 "문화와 정서상의 차이를 극복하는데에는 3년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