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을 가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데 의외의 일이 하나 있었다.

수강신청서,안내책자 등이 든 대봉투에서 호각 한 개가 나오는 것이었다.

참 별 일도 다 있다.

애들 장난감 하라고 주는 건가.

어리둥절한 차에 곧 원주민(?)의 해명이 있었다.

늦은 밤 귀가시 누가 위험에 처할 경우,불어서 위치를 알리라는 것이었다.

소위 "문화적 충격"을 받은 작은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귀한 영어 한 자락을 그저 배웠다.

"Blow whistle" 나중에 우연히 이 말을 들었을 때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호각을 불다"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무슨 문제가 있거나 예상될 때,누군가 나서서 경종을 울린다는 뜻이다.

실질적이든 은유적이든 어쨌든 미국은 호각이 이처럼 각별한 의미를 갖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재난을 대비하는 호각수들이 그렇게 다양하게 포진한 나라가 없다.

전쟁,마약,신종 바이러스,Y2K,토네이도,화산폭발,제3국 테러,환경오염,자원고갈,불황...구석구석 지켜서서 시도 때도 없이 빽빽거리는 덕에 수많은 사람이 큰 화를 피하고 산다.

우리나라는 한 때 대학생들이 목에 핏발을 세우며 호각을 불어댔다.

머리 물들이고 귀에 코에 구멍을 뚫느라 요즘은 뜸해도 전엔 활약이 대단했었다.

지금은 소위 NGO(Non-Government Organizatoins)들이 미주알고주알 따지느라 고생이 많다.

떡도 안생기는 일을 그토록 알뜰히 챙기는 데는 큰 박수가 아깝지 않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나도 호각은 커녕 헛기침 소리도 안내던 정부도 이젠 달라졌다.

체계는 아직 덜 섰지만 적어도 저마다 호각 한개씩은 물고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다행히 우리 주식시장 또한 이제는 여기 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위험을 논하는 이가 생기고,"사지마라""팔아라"하는 매우 듣기 힘든 용어를 쓰는 악역도 가끔 출현한다.

깡통 찬 사람이 책을 쓰고,신화적인 손실을 올린 사람도 TV에 나와 말을 한다.

나는 60%이상 틀리니까 나에게 시장을 묻지 말라고 말하는 용감한 펀드메니저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의 주류는 여전히 낙관론자,확신론자들이다.

홍수가 나서 곧 떠내려갈 판인데도,비가 올만큼 왔으니 앉아서 기다려보자는 요행론자들이다.

쌍바닥,진(眞)바닥,역사적 바닥,역사에도 없는 바닥 등을 찾는 바닥론자들이다.

이들은 어찌 된 일인지 승부주,추천주,특징주...하며 눈만 뜨면 주식 "사는"얘기만 한다.

일월효과,총선효과 섬머 랠리(Summer rally),연말효과...하며 철만 되면 보약을 찾는다.

깨진 주식 물어보면 어김없이 단기낙폭과대,기업실적 운운하며 "보유"판결이다.

920,860,820,770,650...수수께끼같은 수(數)들을 나열하며 저점을 논하고...240,200,170,100...주문을 외며 반등시점 점괘를 보고...지난 십 수년을 한결같이 그렇게 흘러왔다.

그러니 디지털,인터넷 시대 뒤에 또 어떤 별난 세상이 와도 변함없이 흐를 것이고...그리고 그 물줄기에 떠내려온 환자들을 보느라 우리 클리닉은 3백65일 낑낑댈 것이고...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 우리도 좀 변하자.

여태껏 샴페인 배달은 많이 했으니 이젠 호각도 좀 불자.

번지점프 백번 시켜주는 사람보다 끊어질 로프 한 번 갈아주는 사람이 더 고맙지 않겠는가.

김지민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한경머니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