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학생 소년예술단의 서울 공연을 기억하는가.

TV화면에 비춘 아이들은 징그러우리만치 능란한 기교를 과시했다.

일각에선 "기계적입네"라며 입방아를 찧기도 했지만 리허설을 지켜본 예술의 전당 관계자들은 "줄도 자주 틀리고 퍽이나 쑥쓰러워하던 귀여운 꼬마들"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재조명되면서 북쪽에 대해 가져왔던 왜곡된 이미지들은 상당부분 수정되고 있다.

남북해빙무드와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9월9일 개봉)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에서 벌어진 남북 군인들의 총격살인사건을 축으로 한다.

무엇보다 북한군인들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모습이 인상적이다.

JSA는 97년 출간된 박상연(28)씨의 장편소설 "DMZ"를 원작으로 했다.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을 다룬데다 3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실감나는 오픈세트,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등의 호화진용으로도 집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뚜껑을 연 영화는 일단 똑 떨어진다는 게 시사회장에서의 반응들이다.

밀도있는 이야기구조나 연기자들의 자연스런 호연이 영화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극은 짙은 밤을 가르는 날카로운 총성으로 문을 연다.

야간에 북한군 초소에 들어가 북한군들을 사살한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사건의 중심이다.

남북한 당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수사는 "누가"가 아닌 "왜"를 캐내는데 집중된다.

중립군 감독 위원회의 소피 소령(이영애)은 진실을 밝힐 단서들을 모으고 조각조각 교차되는 과거속에 남북한 군인들간에 싹튼 진한 우정과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원작은 분단이 빚어낸 비극을 진지하게 조명한 반면 영화는 유머의 힘을 빌려 "밝기"를 올렸다.

"마냥 진지하기만 해서는 요즘 관객들을 도저히 자리에 잡아둘 수가 없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미제 라이터에 탄복하거나 이수혁이 건네준 플레이보이지를 넘기며 "역시 미제가 제일"이라고 침흘리는 북한군 오중사역의 송강호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과 툭툭 던지는 대사로 폭소를 자아낸다.

착한 심성의 북한병사 정우진역을 열연한 신하균의 순진한 연기도 정겹다.

사건이 일어나기전 외국 관광객의 카메라에 찍힌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비추는 마지막 신은 작품의 비장미를 조용하지만 힘있게 고조시킨다.

하지만 헛점도 보인다.

소심하고 심약해 자살까지 기도하는 남일병(김태우)이 초기 수사과정에서 "변비에는 소식이 올때마다 즉각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다"라며 태연히 유머를 구사하는 모습은 일관성을 깬다.

진실을 향해 좁혀드는 소피의 수사는 치밀한 머리싸움에서 오는 지적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채 술술 풀려만 간다.

"휴먼 드라마"로 관객의 감정을 뒤흔들어놓기에는 뒷심이 달려 보인다.

2년전 영화를 기획했던 제작사(명필름)측은 때마침 시대적 분위기가 받쳐줘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판문점에 불고 있는 순풍을 타고 JSA가 쾌속항진을 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