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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申聞鼓인가 訊問苦인가 .. 하응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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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응 백 / 문학평론가

    지난 겨울 인터넷의 한 낚시사이트 자유 게시판에는 아주 친절한 조행기가 올려져 있었다.

    내용인즉 어느 주말 강원도로 빙어 낚시를 하러 가다 길이 막혀 돌아오는 길에 경기도 남양주군 오남리서 빙어낚시터를 발견했고,거기서 엄청난 조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게시물엔 친절하게도 그 낚시터로 가는 길까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며칠 후 그 게시판에는 경고 표시가 붙은 게시물이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오남리 빙어터를 소개한 사람은 그 낚시터 관리인인 것 같다,만원씩의 입어료를 받는다,빙어가 잘 잡힌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그런 광고성 게시를 하지 말라,조사님들은 속지 말라''등의 내용이었다.

    7월 24일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인터넷에 자신을 험담한 글이 올려져 고민하던 중학생이 투신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토론방의 주제는 ''학생들의 용의(머리,옷,신발 등) 어떻게 할까''였다.

    숨진 학생의 부모는 경찰에서 아들이 최근 대전시 교육청 홈페이지 사이버 토론방에 자신이 귀고리를 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다고 비방하는 글이 올려져 친구들과 다투는 등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문학과 지성사 인터넷 홈페이지는 지난 5월 한 시인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피해 여성의 고발성 게시물로 대단한 홍역을 치렀다.

    출판사는 급기야 게시판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7월18일 다시 문을 열면서,문학 논의가 ''엉뚱하게 성폭행 사건에 대한 논란으로 옮겨가면서,그 사태를 둘러싼 설전에서부터 그것과 전혀 무관하게 개인적인 한풀이를 노리는 방뇨성의 글에 이르기까지 온갖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여 언어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탄하고 있다.

    성추행 논란은 고소로까지 이어졌으니 법정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자유게시판에는 문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글들로 분분했다.

    문학과 지성사가 게시판을 폐쇄한 뒤에,과연 게시판의 폐쇄 조치가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그후 이 사건은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 인터넷 홈페이지 7월20일자 자유 게시판에는 작가 황석영의 동인문학상심사 대상 거부 선언에 대한 네티즌들의 일련의 의견들이 개진되어 있다.

    그중 ''무료한 저녁''이라는 닉네임의 ''난 황석영 너를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두 글은 각각 ''눈에는 핏물이 툭툭 떨어질 만큼 잔혹해 보이고,입술에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가슴은 야비함으로 가득 차 보이는 의사 전달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당신에 반대한다''와 ''혹시나 아침에 황석영 그자를 보면 하루가 잡친다''이다.

    이어서 올라온 ''싫소이다''라는 닉네임은 ''운영자님,무료한 저녁 글 다 지워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당신 같은 넘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이 안돼.그런 인신공격하지 말고 똑 바로 살아라. 개○○야,똑 바로 살아라.흐흐흐 내가 너한테 왜 욕을 하는 줄 아느냐? 어차피 운영자가 네 글 수준을 짐작해서 지우겠지만 여기서 욕이 오가면 그 당사자끼리의 글들은 지운단다''는 전략적인(?) 글을 쓰고 있다.

    이 사항들을 보고 이것 역시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구축되고 있는 전자 민주주의의 사소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도기적인 현상이니까,개인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인터넷의 쌍방향성과 동시성을 통한 여론의 즉각적인 수렴을 위해,나아가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희생해야 할 작은 대가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인터넷은 말 그대로 거대한 거물망임으로 해서 인위적인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통제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통제는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고,만약 통제를 한다면 끈질긴 저항에 부딪힐 것임도 자명하다.

    그렇다고 익명의 탈을 쓰거나 안면 몰수로 행해지는 각각의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은 어떻게 하나.

    맞받아 치는 정글의 법칙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인터넷은 신문고(申聞鼓)인가,신문고(訊問苦)인가.

    인터넷의 윤리학이 그래서 필요하다.

    / H6134@chollian.net

    ◇필자 약력=△경희대 국문과 △국민대 문예창작 대학원 교수 △평론집 ''낮은 목소리의 비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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