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 소설가 ji2598@hitel.net >

비 온 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 나들이 나왔다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말라죽은 지렁이 ''시체''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시멘트 틈새를 뚫고 눈을 틔운 작은 풀꽃들은 물론이고 그 사이를 바지런히 오가는 콩벌레나 지렁이 시체를 떠메고 가는 개미들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 세월가는 줄도 몰랐는데,요즘은 재미 하나가 더 생겼다.

맨발로 걷기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대로변에 있어 여름이면 잠자리에 누워도 한뎃잠을 자는 것처럼 소음에 시달리는데,처음 그곳으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염려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먼지와 소음을 감수할 만한 매혹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창문으로 산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이사올 때는 매일 저 산을 올라야지 생각했는데,어떻게 된 일인지 전보다 더 그 산에 가는 일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옥에 티라면 자그마한 산 안자락에 어울리지 않게 건축중인 대규모의 건물이었다.

통도사 일산지원 여래사라고 했다.

적멸궁으로 유명한 양산 통도사는 두어번 가본 터라 절 지붕이 갖춰지고부터는 눈으로 산자락을 어루다가 자연스레 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 절이 개관한다는 보도를 접하고,절도 둘러보고 그날 행사 중 하나인 임이조 승무도 구경할 겸 집앞 나들이를 했다.

언론 홍보의 위력 때문인지 마당 없이 건물만 우뚝 선 경내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성황이었다.

과연 임이조라, 염려했던 뭇 중생들의 소란을 단숨에 거둬들이며 저 너머 부처님의 염화(染化)세계로 이끌었다.

그의 부처스런 미소와 영롱하게 휘날리는 흰 빛의 투명한 사라 자락에 휘감겨 나도 모르게 발길을 절 뒷산으로 향했다.

정상에 있는 평심루에서 무심히 지나는 바람에 한번 더 가슴을 내주고 싶었다.

멀리 한강을 바라본 후 평심루에서 내려오다가 풋풋한 흙냄새에 반해 그만 신발을 벗어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혹 미친 여자는 아닌가 흘낏거렸다.

중간쯤에 이르러 벤치에 앉으려는데,앉아 있던 모녀가 흙길을 사분사분 걸어내려오는 나를 보고 뭐라뭐라 하더니 내가 앉자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마나 명상 자세로 가부좌를 틀다 문득 그들을 바라보니 그들 역시 몇 발짝 떼지 않아 신발을 벗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손끝까지 미소가 감돌았다.

맨발로 걷는 그들의 발뒤꿈치가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