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돈 <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

김대중 정부가 행한 행정개혁적 조치들 중 간판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개방형 임용제도"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정부안에서의 근무 경험만으론 확보하기 어려운 사항들,예컨대 과학기술 정보통신 환경 외환위기 국제협상 등 새로운 국가적과제로 등장한 문제들에 대한 전문적 해결 능력이라든가,정부 서비스의 수요자에 해당하는 민간 시각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그리고 정부 스스로를 혁신하는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22개 개방형 직위에 대한 채용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4개 직위에만 민간인이 채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기존 공무원들로 채워지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까.

크게 보아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팔이 안으로 굽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지원한 공무원들보다 더 우수한 민간 인력이 지원을 꺼렸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 때문이라면 개방형 임용제도 자체의 개선보다 인사권자들에 대한 개혁적 조치가 있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아니면 아예 개방형 임용직에 대한 지원 자격을 민간인으로 못을 박든지.두번째 이유 때문이라면 왜 우수한 민간인력이 지원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우수한 민간인력들이 개방형 직위에 지원하지 않게 된 가장 근본적 이유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비중있는 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마다할 정도로 개방형 직위가 채용 절차에 있어서나 근무 조건과 환경이 매력적이질 못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임용제도는 공개경쟁절차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우수 민간인력 반열에 들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성공의 경력이 생명이다.

100% 채용이 장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지원했다가 만일 경쟁에서 떨어지게 되면 이 자체가 이들의 경력에 치명적 오점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민간 보수와 공무원 보수사이의 현격한 차이다.

개방형 임용제로 임용된 사람들에게는 계약직 보수체계가 적용된다.

가장 상위의 보수 등급에 해당하는 "가등급"의 경우 상한선이 없게 되어 있어 이론상으로는 민간 보수에 대등한 보수를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면 개방형 직위의 업무 난이도가 상관인 장관이나 대통령 직위 난이도보다 더 클 수 없다.

그러므로 장관이나 대통령 급여보다 더 높은 급여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차관급 자리라면 명예라도 있어 비록 보수가 적더라도 자리를 옮길 만 하겠지만 1~3급 공무원 자리의 경우에는 이런 명예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

우수한 민간인력이 개방형 직위에 지원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설령 채용된다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 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동료나 부하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지는 않을지,인사권이라든가 조직권.재정권과 같은 "실탄"이 실제로 얼마나 확실하게 주어질 지 등 실제로 일을 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다.

문제를 이렇게 진단해 볼 때 대안은 명확해진다.

첫째,정말로 필요한 우수한 민간 전문 인력이 있다면 이들을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위 "모셔오는"것이 가능해지도록 채용 절차가 보완돼야 한다.

이 경우 정실 임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가능성의 차단은 인사위원회의의 인사감사권 강화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둘째,개방형 직위에 임용되는 민간인의 경우 민간인 신분으로서 받던 연봉의 보수보다 더 주지는 못하더라도,그보다 적은 보수를 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민간인에 대해 당분간은 장,차관이 확실하게 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좋은 제도가 도입됐는데,초기 결과의 부족함으로 제도 자체를 철회해서는 안 된다.

이 제도를 통해 그나마 정부내에 들어 온 민간인들이 성공 사례를 남길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성공 여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우수한 민간 전문 인력들이 개방형 직위에 지원하느냐를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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