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성이 매우 각박하고 공격적으로 변한 것 같다.

이처럼 국민들의 정서가 달라진 데에서 긍정적인 면과 우려할 점을 동시에 감지한다.

다양한 이해집단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이를 조화롭게 극복하는 것은 사회발전 과정의 필연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민주화되고 깨인 사회는 획일적이고 강요된 질서 속에서 안정을 달성한 군부독재 시대보다 분명히 긍정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해집단의 갈등이 표출되거나 자기책임을 망각한 도덕해이가 야기되는 것은 분명히 우려할 점이다.

특히 집단행동이 집단이익 외에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의식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물질적 성장만으로는 선진화를 정착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해소하는 타협의 기술과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의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조화와 타협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발전적 사회의식 토대가 개인주의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다르다는 점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개인주의는 단순히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산적 역량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국 개인주의 기원(The Origins of English Individualism)"(Alan Macfarlane,Cambridge University)은 귀감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사를 중심으로 "왜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서장과 본론 8장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촌락공동체 중심인 영국의 소농(peasant)이 시장과 화폐의 침투로 붕괴되고,사회적 개인주의 사상이 보편화되면서 자본주의 시장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검증한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선도.정착시킨 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점이다.

그 첫 단계는 촌락공동체 윤리가 붕괴되어 사회적 개인주의가 수용되고 사적 소유와 이윤추구 동기가 정착된 단계다.

둘째는 갈등과 붕괴 성향을 지닌 이기주의가 청교도윤리에 의해 사회공동선을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 단계다.

이 책은 개인주의가 개인의 사회경제적 이익추구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아울러 시장경제의 무한 경쟁질서에서 장기적 발전성향을 부여하는 것은 자기계발과 책임을 강조하는 자아교육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역사발전철학으로서 유물사관 또는 경제사관 대신 인간이 사회의 토대이고 정치.경제.교육이 상부구조라고 인식하면,역사발전의 기초는 결국 인간계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인간발전은 매우 느리지만,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진보한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