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산가족 방문후보자 명단공개 사흘째를 맞은 18일 대한적십자사에는 뒤늦게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드는 이산가족들로 붐볐다.

방북신청에서 탈락한 노인들의 안타까운 항의방문도 이어졌다.

이들은 이산가족 상봉 후보선정기준 등을 따지면서 자리를 뜨지 않아 적십자 상담요원들이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뒤늦게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부 실향민들은 50년간 참아왔던 울음을 끝내 참지 못했다.


<>.8.15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 결정된 워커힐호텔은 지난 84년 남북적십자회담 이후 85년 이산가족 상봉,최근 북한 농구선수단,평양교예단 방문 등에 이르기까지 여덟번째로 남한을 찾는 북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됐다.

워커힐호텔은 18일 북측 일행 1백50여명을 포함,취재진 등 최대 6백여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방문 일자인 내달 15일부터 18일까지 총 6백23개 객실중 2백50개 방을 잡아두고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워커힐측은 앞선 경험을 살려 객실과 식음료팀,총무팀 등을 중심으로 이산가족상봉 준비팀을 이미 꾸렸고 직원 9백여명중 절반 정도가 이들을 맞는데 매달리고 있다.

또 방문단이 대부분 노인이어서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한식메뉴를 준비할 계획이다.


<>.북에 가족을 두고 온 김남열(84.강북구 수유3동)씨는 최종 상봉자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상봉절차를 묻느라 여념이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했는데 평양인지,금강산이지 판문점인지 상봉장소를 확인하러 왔다"면서 "북한에 가면 우리돈을 쓰지 못한다는데 달러로 바꿔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부인 오해봉(81)씨와 장남 성온(62)씨,차남 국온씨,딸 신자씨 등 가족을 두고 홀로 남쪽으로 피난왔다.

이씨는 "남한에서 과부와 재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사장인 이종균(61.성북구 수유동)씨는 6.25가 터지자마자 의용군에 끌려간 형 리종원(71)씨의 명단을 확인하고 상봉에 대한 기대로 크게들뜬 모습이었다.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형 종균씨는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 강좌장을 지냈다.

동생 종원씨는 5~6년전부터 북경대사관을 통해 인편으로 편지를 전해 받고 형의 생존사실을 알고 있었다.

종원씨는 "지난 97년 황장엽씨 망명사건 이후 편지가 끊겼다"면서 "이번에 명단을 확인하고 접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형 종균씨는 현재 북한과학원 수석연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김동만(68)씨는 6.25 발발 직후 헤어진 큰형 동진(74)씨가 북쪽의 이산가족상봉 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감격해했다.

2남3년의 장남인 동진씨는 고려대 경제학부 학생이었지만 가족과 헤어진채 소식이 끊겼다.

당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온가족이 함께 살다가 큰형만 사라졌다.

이후 동만씨 가족은 반공단체 등으로부터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집이 몰수당하고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는 등 고통을 겪었다.

동만씨는 "지난 92년 어머니 정복순씨가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삶을 마감하시면서 "내 묘옆에 큰 아들 묘를 만들고 북쪽으로 향하게 하라"고 유언을 남기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동만씨의 누님 동순(71)씨와 동생 정순(62),경자(59)씨는 모두 남한에 살고 있다.


<>.평안북도 박천군 덕안면이 고향인 실향민 이순호(81.용산구 청파동)씨는 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들 생각에 목에 메였다.

이씨는 "고향에 사는 큰 아들 정윤아,항상 너희들 생각뿐이다.

아버지는 너희들한테 죄송스럽게만 생각한다.

상봉할때까지 건강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꺼내 놓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혹시 북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전해주기 위해 항상 편지를 품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씨는 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가족들을 두고 집을 나온뒤 피난민에 휩쓸려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씨는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께 한달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는데 50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기 안양에서 올라온 황주영(57)씨는 북한에 있는 셋째형 형 주태(68)씨가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에 "죽은 사람이 살아왔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주영씨는 "TV뉴스를 보고 뒤늦게 형의 소식을 알게 됐다"면서 "남에 있는 형제들과 연락하느라 밤새 한숨도 못잤다"고 말했다.

주영씨 가족은 충남 아산군 신정면에 살았지만 셋째형만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며 혼자 살다 난리통에 헤어졌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