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 푸닥거리를 해야겠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온 세상에 희망만 가득할 것 같았는데.

웬걸,국민의 정부가 돼도 별반 달라진 건 없고...

우리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형틀은 몇년의 해체작업으로는 쉽게 부숴지지 않았다.

고난의 역사속에 뿌리박은 피해의식이 2000년 서울 하늘아래에 아직도 꿈틀대고 있다.

여전히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휘둘리고 그저 흔들린다.

남북이 화해하고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바다가 또 펼쳐질 판인데 마음 한구석은 아릿하기만 하고...

그 형틀이 또다른 모습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최근 대학로 마로니에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임팔라의 밤은 길다"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푸닥거리"다.

일상속에 녹아있는 왜곡된 현대사의 분자들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얼마나 크게 지배하고 있는가 하나 하나 벗겨본다.

집단의 안녕을 위해 사자에게 희생당하는 한마리 임팔라 사슴의 아픔이 느껴진다.

임팔라 한마리면 사나흘 동안은 평화가 보장되는데 우리 사회에는 왜 이리 많은 임팔라가 필요할까.

머리 한쪽이 무거워진다.

이 작품은 몇년 전 유흥주점의 심야영업이 금지됐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호루라기를 불며 심야영업을 단속하는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여흥을 즐겨야했던 시민들이 갈등의 접점에 있다.

"니네 국민들 다 두더지로 만들어라,그래 난 두더지다","산불 홍수 평화의댐에 성금내는 우리 백성들,참 줄도 잘 서지"

이리도 할말이 많은가.

일제시대 유랑하던 민족사에서 소설 "아리랑"의 원혼을 달래는 제로,군대얘기로 시작해 불법영업장에서 술마시는 소시민의 삶으로 한은 이어진다.

꾸역꾸역 밀어넣기만 했던 울분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불협화음을 만들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속시원하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작은 전쟁같은 술집풍경에 포커스를 맞춘다.

막을 내릴 때까지 같은 무대,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한적이나마 사건이 충돌하고 톤과 템포를 달리하는 연출이 필요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손에 잡히게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과연 어떻게 끝맺음할지 관객들을 걱정시키는 연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봉규 김경수 승의열 등 실력파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력이 극을 살리고 있어 다행이다.

장규호 기자 seinit@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