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 연세대 정치경제학 교수 >

최근 국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남북 정상회담관련 논쟁이 거세다.

전개되고 있는 남남 논쟁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

첫째,주적개념의 혼란상이다.

아직 북한이 남조선 적화통일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상태는 끝이 났다고 오도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남북관계 개선을 과대 포장하여 한미관계에 혼선을 가져오고,급기야는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급기야는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연속이다.

따라서 과거와의 단절을 시사하는 기존 패러다임의 혁명적전환은 엄청난 정치,사회적저항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냉전의 첨예한 대결 구도하에서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친 기성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국가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쉽게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보수와 진보의 두 축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남남논쟁은 다분히 허구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다.

우선 주적개념을 살펴보자.아직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미 조성택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밝혔듯이 북한은 아직도 우리의 주적으로 남아 있다.

긴장완화의 초보단계인 상호비방의 중지,공세적 또는 비하적 용어나 행동의 자제를 주적개념의 변화로 파악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군사전략 전술 배치 무기체계 그리고 국방비부문에서의 변화를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일부 우려의 표명은 다분히 현실과 거리가 멀다.

주적개념을 변화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긴장완화,군사적 신뢰구축,군비 통제와 감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휴전 협정의 남북 평화협정 대체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주적개념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남한의 국가보안법,북한 노동당 규약과 형법 등 남북간의 적대적 제도와 법규가 전향적으로 개정,폐지될 때 진정한 의미의 주적개념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 못지 않게 현 정부도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안보에는 "설마"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한 보수와 진보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둘러싼 보수,진보간의 대립 역시 문제시 된다.

과거처럼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선결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 나왔을 때는 이 양자간의 대립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측은 주한 미군주둔의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까지도 미군 주둔의 현실을 인정하는 차제에 진보측이 이를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매향리 노근리 SOFA문제를 중심으로 반미 감정이 격화되고,이를 빌미로 미국측이 주한미군의 감축 및 철수를 앞당길 경우,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까지도 대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미동맹의 균열은 남측 내부의 국론 분열을 조장,정부의 전향적 대북관계개선을 봉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한미군의 과도기적 주둔은 보수,진보 양 진영이 공히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미화를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김 위원장이 슈퍼 스타로 둔갑한 것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가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정상의 인기는 추락하기 마련이다.

만일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계속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면 그의 인기는 지속될 수 있고,이는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민족통일을 위해 지극히 바람직하다.

이렇게 볼 때,현재 전개되고 있는 남남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인 논쟁이라 평가 할 수 있다.

이제 총론에 급급하지 말고 우리 모두 이념 지역 정파의 구분없이 각론적 실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때 이른,그리고 무모한 비판은 모처럼 만들어 놓은 판을 깰 수도 있다.

차분한 마음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구체적이고도 각론적 비판을 가 할 때 평화와 통일의 지평은 예상보다 빨리 우리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