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금융권의 잠재부실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그 처리대책을 밝힌 것은 금융시장의 구조적 안정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돈 흐름이 막혀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같은 현상은 시중의 유동성을 감안할 때 일시적 현상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대우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겪은 몇차례의 불안은 "마찰적 현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투신사에 예탁했던 개인투자자들이 대우사태로 인한 손실을 우려,일시에 돈을 인출하려 함으로써 일어난 시장불안은,신탁자산이 입은 손실에 관계없이 최고 95%의 지급보장을 해줌으로써 진정됐다.

그 결과 투신사들이 안게 된 "부담"은 부실우려로 번지며 투자자들이 투신을 떠났다.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몰린 투신사에 무려 4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번 회사채 및 CP시장에 자금이 고갈돼 기업의 신규 자금조달은 물론 기존의 회사채나 CP를 차환 발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결국 이같은 금융권의 부실이 진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의 부실을 투명하게 밝혀 이를 해소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정하고,그동안 은행권 대출자산의 건전성 평가기준에서 예외 취급해 왔던 워크아웃여신과 법정관리.화의대상 여신은 물론 부실 가능성이 높은 다른 여신까지 건전성을 분류,그 부실 규모를 공개한 것은 이를 정리하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부실정리에 모든 역량을 이번 공개에서 제외된 종금사.신용금고의 부실과 처리 방안도 조속히 밝혀 이에 대한 시장 나름의 검증과 납득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금융불안을 해소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는 금융.기업계의 잠재 부실이다.

그동안 강력히 추진해온 구조조정문제도 궁극적으론 이같은 부실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계기로 당면한 경제시책의 우선과제는 금융부실 정리임을 분명히 하고 여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금융부실은 어떠한 어려움과 부작용이 있다하더라도 하루빨리 털어 내는 것이 부담과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다.

먼저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별기관의 자율적 정리를 촉구해야 하겠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서둘러 매듭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날 시장불안의 대응도 사회적 부담과 비용을 줄이고 부실을 정리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덮는다거나 앞으로 더 큰 부실의 원인이 되도록 미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부실의 정리는 시장원리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당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직접 부실을 정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을 정해 이를 일관되게 지키고 관리함으로써 유도.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건전성 확보를 위한 자산평가 기준과 방법을 점검하고 또 위험도에 따른 대손충당금 기준을 정해 적립을 촉구해야 한다.

부실의 해소는 당해 기관의 자율적인 경영결단에 맡겨야 한다.

그 결과 건전성에 위협을 받게되는 기관에 대해선 감독당국이 적기 시정조치권을 발동한다면 개별 금융기관의 경영개선 과정을 통해 전반적인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같은 자율적인 바탕위에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공적자금을 공론을 거쳐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공적자금의 운용은 "책임원칙"을 정해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를 방지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추가적인 부실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개선작업의 대상기업도 그 회생가능성을 철저히 점검,가능성이 낮은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오늘날의 경제적 어려움이 "시설과잉"에 큰 원인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이다.

고용문제와 같은 사회적 충격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과잉시설을 적시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부담과 능률을 저하시켜 시장의 불신을 사고 있다.

고통이 없는 수술은 있을 수 없다.

"부실의 정리"가 당면 경제의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다소의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과감하게 단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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