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스 데스포 약력 >

<>1913년 뉴욕 출생
<>뉴욕 브루클린대 졸업
<>1933년 AP통신 사진기자
<>50년7월~53년 9월 6.25 종군
<>1951년 "폭파된 대동강철교"로 퓰리처상 수상
<>1980-1985년 유에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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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데스포(87).

그는 6.25전쟁이 한창일 당시 폭파된 대동강다리 난간에 매달린 피란민 무리를 전세계에 보여줌으로써 1951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AP통신 사진기자였다.

올해 50주년이 되는 6.25에 맞춰 한국정부가 초청한 외국인 종군기자 25명중 한 사람이다.

23일 서울에 온다.

그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근교 매릴랜드주에 있는 아파트를 21일 찾았다.

87세라는 고령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2년전 재혼한 셜리(77)여사와 살고 있다.

그의 아파트는 소형 박물관같았다.

일본 중국 캄보디아 인도 태국 등에서 가져온 그림과 토속품들은 그가 취재활동을 했던 현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 많은 전시물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대동강철교 피란민"사진이었다.

서재벽면 중앙에 걸린 대동강철교 사진옆에는 흰눈이 가득 덮인 들녁에 사람의 두 손만 눈밖으로 드러나 있는 참혹한 사진도 걸려 있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정상회담을 지켜봤습니다.

당시의 대동강다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리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있던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방문중 바로 그 다리에 있었던 사람이 살아있다면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데스포씨는 당시 상황을 차분히 상기해 냈다.

"중공군이 밀려들자 동북부에 있던 유엔군과 민간인들이 흥남부두로 몰려들었습니다.

서부에 있던 나는 이를 취재하기 위해 군에서 내준 지프차로 동부끝 흥남으로 갔지요.

다들 죽음의 위험에서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순간에 그 현장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모험중의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유엔군이 민간인과 군인들을 소개하는 작전을 질서있게 잘 끝냈고 배도 무사히 빠져나와 그덕에 오늘까지 살아있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인천상륙작전 일환으로 서울을 탈환하는 유엔군이 북한군과 시가전을 벌이는 현장에도 있었는데 이것 또한 목숨을 건 위험한 취재였습니다.

하지만 내 사진기가 나의 방패이자 나를 지켜주는 무기라고 생각하며 역사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논란이 많은 미군철수문제와 관련,한반도에 긴장과 전쟁위험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보장만 있다면 미군 철수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에 대한 경협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다는 사실과 배고픔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길수 없는 고통입니다.

양측이 지혜를 발휘하여 이들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랍니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www.bjGlob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