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89) 제1부 : 1997년 가을 <8> '정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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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상화
"전두환 때는 어떻게 기업을 골랐나요?"
백인홍은 전 정권들의 정치자금 모금 행태에 흥미를 느껴 도만용에게 다시 물었다.
"전두환은 기업가들이 청와대에서 정치자금 헌금 요구가 장기간 없으면 불안에 떨 정도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지.기업가들은 정권에 핍박당할까봐 불안해하며 집권자의 눈에 "미운털 난 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금을 내놓았고,전두환은 무조건 받아둔 듯해.그래서 "큰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측근에게 거액을 풀었을 뿐 아니라 퇴임 후를 대비하여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거야"
"노태우는 어땠나요?"
"치사하게도 준다면 마지못해 받는 척하면서 야금야금 챙겼지.그러다가 보기좋게 망신당한 거야.정치가나 관료는 눈먼 돈의 임시주차장이어야지 종착역이 되면 안 돼.그게 좋은 정치가나 관료의 그릇이고 노하우야"
열변을 토한 도만용은 목이 마른지 냉수로 목을 축이고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도만용의 잣대로 따지면 틀림없이 도만용은 훌륭한 정치가고 관료라고 백인홍은 생각했다.
눈먼 돈.. 가만히 앉아 받아챙기기만 하는 입장에서 보면 "눈먼 돈"이겠지만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피멍이 든 돈"일 텐데,그 돈의 대부분은 도만용의 주머니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음을 백인홍은 신빙할 만한 정보에 근거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만용의 출세철학은 어떻게 보면 간단명료했다.
첫번째 요소는 공직자의 결제는 수혜자가 있게 마련인데 그 수혜자가 개인인 경우 분명히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며,그가 받아들이는 대가는 한 가지다.
현금이나 수표뭉치..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간단하고 계량화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량화에 있어 특히 그는 백분율의 부호를 좋아했다.
여신대출금의 몇 퍼센트,구입가격의 몇 퍼센트,수익예상금의 몇 퍼센트 등을 애용했다.
두번째 요소는 11조가 아니고 17조의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어거지를 써 울거낸 돈의 7할은 다른 사람에게 뿌리고 나머지 3할만 자신이 챙긴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가들,검찰을 포함한 사정기관원들,그리고 언론인을 포함한 여론조성 계층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철저히 지킴으로써 그는 걸어다니는 다이너마이트 행세를 하는 입신경지에 들어서게 되었고,그가 폭발하면 17조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모조리 다치게 되므로 그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도만용의 출신가정 배경은 어떠했는가? 가정교육은 어떠했는가? 청년시절 무슨 책을 읽었으며,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가? 최소한의 정의감과 윤리감각마저도 어떻게 버리게 되었는가? 그를 출세시킨 인생철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돈의 위력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각료로 입각하기까지의 출세 과정은 어떠하였는가? 정치계에 입문하여 또다시 어떤 변신을 시도할까?..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20세기 말을 전후한 한국사회상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도만용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설적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끝없는 연구대상이 될 것이고 이 시대가 배출한 성공 인물의 최적 표본이 될 것이라고 백인홍은 생각했다.
"전두환 때는 어떻게 기업을 골랐나요?"
백인홍은 전 정권들의 정치자금 모금 행태에 흥미를 느껴 도만용에게 다시 물었다.
"전두환은 기업가들이 청와대에서 정치자금 헌금 요구가 장기간 없으면 불안에 떨 정도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지.기업가들은 정권에 핍박당할까봐 불안해하며 집권자의 눈에 "미운털 난 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금을 내놓았고,전두환은 무조건 받아둔 듯해.그래서 "큰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측근에게 거액을 풀었을 뿐 아니라 퇴임 후를 대비하여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거야"
"노태우는 어땠나요?"
"치사하게도 준다면 마지못해 받는 척하면서 야금야금 챙겼지.그러다가 보기좋게 망신당한 거야.정치가나 관료는 눈먼 돈의 임시주차장이어야지 종착역이 되면 안 돼.그게 좋은 정치가나 관료의 그릇이고 노하우야"
열변을 토한 도만용은 목이 마른지 냉수로 목을 축이고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도만용의 잣대로 따지면 틀림없이 도만용은 훌륭한 정치가고 관료라고 백인홍은 생각했다.
눈먼 돈.. 가만히 앉아 받아챙기기만 하는 입장에서 보면 "눈먼 돈"이겠지만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피멍이 든 돈"일 텐데,그 돈의 대부분은 도만용의 주머니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음을 백인홍은 신빙할 만한 정보에 근거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만용의 출세철학은 어떻게 보면 간단명료했다.
첫번째 요소는 공직자의 결제는 수혜자가 있게 마련인데 그 수혜자가 개인인 경우 분명히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며,그가 받아들이는 대가는 한 가지다.
현금이나 수표뭉치..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간단하고 계량화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량화에 있어 특히 그는 백분율의 부호를 좋아했다.
여신대출금의 몇 퍼센트,구입가격의 몇 퍼센트,수익예상금의 몇 퍼센트 등을 애용했다.
두번째 요소는 11조가 아니고 17조의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어거지를 써 울거낸 돈의 7할은 다른 사람에게 뿌리고 나머지 3할만 자신이 챙긴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가들,검찰을 포함한 사정기관원들,그리고 언론인을 포함한 여론조성 계층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철저히 지킴으로써 그는 걸어다니는 다이너마이트 행세를 하는 입신경지에 들어서게 되었고,그가 폭발하면 17조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모조리 다치게 되므로 그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도만용의 출신가정 배경은 어떠했는가? 가정교육은 어떠했는가? 청년시절 무슨 책을 읽었으며,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가? 최소한의 정의감과 윤리감각마저도 어떻게 버리게 되었는가? 그를 출세시킨 인생철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돈의 위력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각료로 입각하기까지의 출세 과정은 어떠하였는가? 정치계에 입문하여 또다시 어떤 변신을 시도할까?..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20세기 말을 전후한 한국사회상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도만용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설적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끝없는 연구대상이 될 것이고 이 시대가 배출한 성공 인물의 최적 표본이 될 것이라고 백인홍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