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은 이제 정보통신업계에서 "공룡"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저 "통신 대기업"이라고 할 따름이다.

"공룡"이란 용어에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수년전까지만 해도 통신업계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한국통신을 "공룡"이라 불렀다.

너무 굼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이다.

최근 서울 63빌딩에서는 대규모 조인식이 열렸다.

50여개 기업 대표들이 컨소시엄 계약서에 서명하고 손을 맞잡았다.

한국통신이 주도한 초대형 위성방송 컨소시엄이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경쟁업체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뒷통수를 얻어맞았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국통신은 서너달전까지만 해도 이 업체와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을 협의했다.

그러다가 협상이 무산되자 순식간에 초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조인식을 거행해 버렸다.

특히 각 분야의 강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서 하나 뿐인 위성방송 사업권에 바짝 다가섰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공룡이 무슨 재주로 이처럼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물음에 "우릴 더 이상 물로 보지 마라"고 답변했다.

날렵해진 비결에 대해서는 "전자결재가 정착되면서 결재에 걸리는 시간이 현저히 단축됐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언제부터인지 한국통신에서는 결재서류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사라졌다.

책상에서도 결재문서를 찾아볼 수 없다.

결재를 1백% 인트라넷으로 하기 때문이다.

임원 회의장에서 회의서류도 볼수 없다.

요즘에는 모두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켜놓고 회의를 한다.

한국통신에서 유통되는 문서는 연간 약 1백만건.휴무일을 제외하면 하루 3천건 안팎의 문서가 오가는 셈이다.

이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신속히 처리되지 않으면 경쟁업체들한테 "공룡"이란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한국통신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4월 사내에 "지식경영 네트워크"란 인트라넷을 구축했다.

물론 이 네트워크 자체가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한국통신은 임직원들이 인트라넷을 적극 활용하도록 채찍을 들고 당근을 내놓았다.

전자문서를 결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점검해 너무 느리면 감점,빠르면 가점하고 인트라넷에 경영정보를 올리면 그때마다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누적된 점수는 인사고과에 반영했고 성과급을 지급할 때도 감안했다.

처음에는 반발하는 사원도 적지 않았다.

얼굴도 보지 않고 결재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고,"감점하려면 해라"는 식으로 나자빠지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자결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또 정보를 입수하면 인트라넷에 올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됐다.

바로 이런 변화가 한국통신을 다시 강하게 만들고 있다

<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