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수련은 크게 발차기,막고 찌르기,격파,품세,그리고 대련으로 나뉜다.

기본 손발 기술을 정지된 물체에 실행하는 게 격파다.

그걸 가상의 움직이는 적들에게 연결 동작으로 실행하는 건 품세다.

대련은 실제 상대방과 겨루는 것이다.

흔히 보는 시합은 자유대련인데, 이에 대비하는 훈련이 약속대련이다.

미리 약속된 기술로 상대를 공격하고,방어하는 쪽은 맞는 시늉도 하고 짐짓 쓰러지기도 하고...

그렇게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대련에서 종종 사건이 생긴다.

특히 유년부 어린이들은 어쩌다 실수로 진짜 한 대 맞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자신의 공격 차례가 되면 반드시 그 빚을 갚는다.

그러면 맞은 놈이 다음 번에 또 때리고...

그러다가 시키지도 않은 자유대련이 되고 급기야 할퀴고 쥐어뜯고 울고불고...

싸움판이 돼 버린다.

주식에서도 점잖은 약속대련이 한 판 전쟁으로 변하기 일쑤다.

어른들 놀이지만 열을 받으면 아이들과 똑같다.

그 과정은 대개 이렇다.

처음에는 다들 기초부터 하나씩 쌓는다.

내재가치,금리,해외동향,이동평균,거래량...

뭐가 어떻게 되면 뭐가 어떻게 변하고...

그리고 소소한 영웅담들을 통해 갖가지 기술도 듣고 배운다.

찍기,지르기,버티기,끊기,잘라 먹기,치고 빠지기,물타기,수수료 떼기 등등.

그러면서 서서히 실전을 익힌다.

백띠 초보답게 우선 조금만 갖고 해 본다.

저평가 됐을 때 사고 고평가 됐을 때 팔고,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고,조정시 저점매수 반등시 고점매도...

시장이 약속(?)을 지켜 주니 배운 공식들이 착착 들어맞는다.

그야말로 약속대련이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제 실력이 늘어 청띠가 됐으니 돈도 더 갖고 온다.

바로 그 순간 회전 차기 한 대가 뺨에 철썩한다.

호재에도 빠지고 악재에도 오르고...

시장이 제멋대로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얼굴이 확 달아 오른다.

본격적인 자유대련을 알리는 신호다.

씩씩거리며 찬스를 보다가 요 때다 하고 찍어차기로 반격을 시도한다.

그 순간 이번에는 돌려차기가 명치에 와서 꽂힌다.

내가 사면 내리고 팔고 나면 오르고...

또다시 장이 말을 안 듣는다.

숨이 막히고 왈칵 겁도 난다.

그래서 접근전을 피하며 빙빙 돌다가 장난 삼아 조금 지르니 그건 또 먹는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약속을 지켜 주는 것이다.

차라리 잃은 것만도 못하다.

이거 정말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콱 열이 받는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딸딸 다 긁어 온다.

그리곤 공중 이단 옆차기로 마지막 승부수를 날린다.

하지만 9단 사부님께 그게 통할 리 없다.

공중에 뜬 채로 앞차기 한 방을 맞고 매트 위에 툭 갖다 꽂혀 버린다.

KO 패다.

시장하고는 약속대련이라는 게 없다.

시장은 제멋대로 신나게 놀고,나는 거기에 장단 맞춰 같이 놀아 주면 된다.

약속대로 안 논다고 열 받으면 애꿎은 심술만 더 당한다.

전망이 밝다 하면 거꾸로 줄기차게 더 꼬꾸라져 버린다.

희망이 없구나 싶어 다 털고 나면 그 날부터 떠 버린다.

호흡기 대고 숨만 깔딱거리던 것이 몇 날 며칠을 피둥피둥 날뛴다.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 매물로 추격매수 자제 운운해서 가만 보고 있으면 밉다고 더 오른다.

본격적인 추세 전환이 어떻고 해서 사면 그 때부터 비실거린다.

정말 속상한다.

하지만 절대로 열 받으면 안 된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돈을 다 털리는 순간이 끝이 아니고,그 훨씬 전 열을 받는 그 순간에 이미 게임은 끝이다.

< 김지민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