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뉴욕에 거주하는 김씨는 요즈음 매사가 즐겁다.

2년전 한국 Y대 입시에 낙방했던 아들이 미국 명문대학들로부터 "3학년 전학허가"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와 아들은 양손에 떡을 들고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혀 학업동기를 느끼지 못했던 아들이 미국에 와서는 무엇에 홀린듯 공부만 한다.

동기를 유발하는 미국공부가 재미있다는 게 아들의 얘기다.

그래서 김씨는 요즈음 아들의 Y대 낙방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김씨 아들의 입학통지서가 공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전문대와 비슷한 커뮤니티칼리지에 입학시킬 때만 해도 김씨는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눈치를 챌까봐 마음을 조렸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미국의 패자부활전이라는 교육시스템에 대한 기대에서였다.

커뮤니티칼리지는 주정부가 재정지원을 한다.

따라서 주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4년제 대학들은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졸업생들을 일정 수 뽑지 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러니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열심히 성적을 관리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사립대들도 자질만 있다고 인정되는 학생이면 커뮤니티칼리지 출신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인다.

국내에 해외유학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영어도 제대로 안되는 애들을 무조건 좋은 대학에만 보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김씨의 경험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

고교수석 졸업생중에도 하버드에 못들어가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명문대출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처럼 이에 매어있지 않는 것이 다른 점이다.

따라서 커뮤니티칼리지냐,명문대냐를 따지는 자체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패자부활전은 언제나 열려있고 이를 통한 부활은 "완전한 부활"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부활을 인정하는데 인색하기 그지없다.

정주영 회장 같은 이는 한국최고의 재벌을 일군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주변사람들이 들려주는 잘 정제된 지식과 최고급 정보를 끊임없이 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하루 하루 달라질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그에게 보통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재벌총수라는 어이없는 딱지를 붙여 놓는다.

미국의 패자부활전은 커뮤니티칼리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때 실패를 했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언제든지 본궤도로 돌아올 수 있다.

원하는 대학에 실패하면 차선의 대학을 선택,대학원단계에서 승부를 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일반사회로까지 그 기회의 시야를 연장한다.

3차 4차 5차 패자부활전을 치를 결심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패자부활전이라 볼 수 없는 "재수"를 선택하는 사람은 미국에 없다.

미국인들에겐 과거보다는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반면 우리는 대학간판과 고시에 볼모잡혀있는 사회다.

대학만 중요하지 대학원은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학간판으로 판가름된다.

대학입시 한번으로 평생을 먹고사는 것이다.

그러니 패자부활전은 대학입시에 다시 도전하는 것만을 의미한다.

고시도 마찬가지다.

수십년 구태의연이 몸에 밴 공무원들이지만 단 한번의 고시 합격증을 무덤까지 들고 가 간판으로 써먹는다.

우리는 재수를 당연시한다.

재수는 더 성숙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하지만 궤변에 불과하다.

긍정적이며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세상을 만끽하려 들면 청년기는 너무도 쉽게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선인들은 "일촌광음 불가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http://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