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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감시대] (63) 제1부 : 1997년 가을 <6> '슬픈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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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석 중간에 홀로 앉아 있는 진성구의 시야에 연출을 맡은 진미숙의 팔이 올라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느린 음악이 흘러나왔다.

    젊은 여인 역을 맡은 김명희가 흐릿한 조명을 받으며 박정희가 앉아 있는 안락의자 옆 탁자 위에 올라가 두 다리를 올리는 등 요염한 자태를 취했다.

    김명희 위로 조명이 더욱 흐릿해지고,무대 한쪽에 서 있는 경호실장에게 강한 조명이 비쳐졌다.

    경호실장이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빈정거리는 투로 느릿한 음률에 맞춰 독창을 시작했다.

    "젊은 여자가 외로운 노인을 유혹한다.

    젊은 여자의 나신,반듯이 누워 두 다리를 공중에 들고 있는 젊은 여인의 나신,조그마한 발,땅 위를 걸어보지 못한 듯한 조그마한 두 발,공중에 떠받치고 있는 연약한 다리,그 다리를 버티고 있는 강인한 여자의 넓적다리,으스러질 것같이 가느다란 허리와 믿음직스러운 골반,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여인의 은밀한 곳..

    왕관을 팽개치게 만들고,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고,천하의 영웅을 천하의 바보로 만들게 하던 바로 그 은밀한 곳..

    악인과 선인,범부와 영웅,미녀와 추녀를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곳..

    세상의 모든 변덕스러움이 도사리고 있는 곳..

    그러한 여자의 음부 속에 몸이 푹 잠겼을 때 외로운 노인은 비로소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

    꼭 감은 여자의 두 눈 가장자리에 희열의 감정이 흐른다.

    꼭 다문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교성이 외로운 노인의 귓전을 스쳐간다.

    그 순간 외로운 노인은 그의 정열을,그의 젊음을 되찾는다.

    비록 순간적인 쾌락이었다 해도,그것은 늙어가는 외로운 노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혼자가 된 노인의 피할 수 없는 반려자인 외로움을 잊어버리게 해준다"

    경호실장의 독창이 끝나는 순간 무대가 환해졌다.

    그때 진성구에게 극장 직원이 다가왔다.

    "진 단장님.어떤 분이 단장님을 뵙고 싶다며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요.

    백인홍씨라고 했습니다"

    진성구는 어리둥절했다.

    7년전 대해실업의 하청업체 사장단 회의에서 본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백인홍이 자기를 직접 만나러 극장까지 찾아올 사연이 있을 리 없었다.

    "백인홍씨라면 나말고 다른 사람 만나러 온 거 아니야?

    분명히 나를 만나자고 했어?"

    진성구가 김명희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아니에요.

    진 단장님이라고 했어요"

    "알았어.기다리시라고 해.곧 갈게"

    진성구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로비로 나왔다.

    백인홍을 만나러 가는 진성구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백인홍이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김명희 때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백인홍이 여자 하나를 잊지 못해 할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의구심을 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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