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시장이 심상치 않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태국 증시는 바닥권에서 최저치 경신을 계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98년초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듯 연일 폭락세로 치닫고 있다.

폴란드 콜롬비아 등 동구 및 중남미에서도 불안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환시장에서 루피아화 환율은 지난주 한때 달러당 8천8백루피아까지 하락했다.

이 바람에 태국의 바트화, 필리핀 페소화 등 인접국의 통화가치도 동반 하락했다.

급기야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루피아화 가치하락을 막기 위한 시장개입을 천명하고 있지만 약발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정치불안과 개혁부진, 미국의 금리인상 전망까지 겹쳐 98년 1월 당시처럼 루피아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국제투자자금의 이탈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주가도 수직낙하중이다.

작년 태국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주가가 강한 오름세를 탔다.

작년 5월과 6월 두달새 주가가 58%나 치솟았다.

그러나 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12일 14개월만의 최저치인 336.54로 곤두박질쳤다.

연초대비 34% 급락했다.

태국 주가의 급락은 외국인투자자들의 거침없는 매도공세에 따른 것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지난 4개월간 2백10억바트(약 5억4천만달러)어치를 팔았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의 투자레이더망에서 태국증시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표현까지 나돌 정도가 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금융시장 불안현상이 2년전 외환위기 당시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경제상황이 갑작스레 나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98년 마이너스 14%나 경제성장이 뒷걸음질쳤던 인도네시아는 작년말부터 수출이 크게 회복되면서 올 1.4분기에 6%가량 성장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태국도 98년 마이너스 8% 성장에서 올해 5%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경제가 지표상으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와히드 대통령이 최근 개혁의 고삐를 늦추고 있는데다 정정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자금지원을 연기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6백80억달러에 달하는 민간부문의 채무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외국인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요인이다.

태국도 금융개혁이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부실채권규모는 금융기관 자산의 30%에 이르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경제회복세가 완연해지고 있지만 최근의 통화가치 하락이나 주가하락을 막을 만큼 경제상황이 단시일내에 개선되기 어렵다는데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최근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또다시 최악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외국인투자자들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동남아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국제자금흐름은 미 연준리(FRB)의 금리정책에 따라 급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준리가 예상외로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경우 미 경제가 자칫 경기후퇴에 빠져들 수 있고 이는 아시아 경제회복을 더디게 만들어 이 지역 금융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태 기자 pyt@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