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이들을 깔아뭉개는 어른들..이오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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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훈이라는 아이가 쓴 시집 "시를 쓰는 아이"에 "착각"이란 제목의 시가 나온다.
"나는 어렸을 때 쇠에 녹이 슨 색을 녹색으로 알았다/그래서 자꾸만 갈색을 녹색이라고 불렀다/엄마가 녹색은 초록색이라고 해도/나는 갈색을 녹색으로 믿었다/아직도 그렇게 착각할 때가 있다"(97.3.16 5학년)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 같은데,나는 우선 여기서 쓴 말 몇 가지를 문제로 삼는 데서 이 시를 이해하고 싶다.
첫째,"녹색"과 "초록색"이란 말인데,사전엔 같은 말이라 하면서 풀빛 풀색 푸른색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녹색의 "녹"은 "푸를 녹"이라고 하는 한자로 된 말이다.
쉬운 우리말은 버리고 한자말을 쓰니 그만 녹슨 색으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이 아이는 잘못 알았다(착각했다)고 했지만,사실은 우리말에 대한 어린이다운 깨끗한 느낌을 잃지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것이다.
이 아이가 녹색이란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늘 헷갈리면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따지고 보면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말이 될수 없는 한자말을 쓰도록 강요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다음은 갈색인데,이것도 한자말이다.
나는 이 나이에 아직도 갈색이란 색이 머리에 퍼뜩 안 떠오른다.
그런데 이 아이는 갈색이 어떤 색인가를 알았던 모앙이다.
갈색이란 말에서 아주 다른 색이 연상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갈색이란 말도 안 쓰는 것이 좋다.
갈대밭에서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갈색을 갈대색이라고 알 테니까.
밤색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나.
셋째는 "착각한다"는 말인데,이것도 "잘못 안다.
잘못 생각한다"하면 된다.
넷째는 "불렀다"인데,여기서는 "했다"고 써야 옳다.
녹색아! 하고 불렀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니까.
왜 이렇게 이상한 말을 썼나?
그 까닭은 모든 어른들이 외국말 "따라 했다"를 "불렀다"로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쓰고 있는 말 몇 가지만을 살펴도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어려운 말로 어지럽히고 깔아뭉개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나면서부터 그 맑은 눈과 깨끗한 마음에 비친 모든 사물에 대한 부드러운 감성과 놀랄 만큼 올바른 직관을 가지고,우리 말로 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도무지 우리 말에 어울리지 않는 어설픈 한자말을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강요해서 그만 이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그 감수성과 재능을 애써 부정하고 착각했다면서 자기 세계를 짓밟아 버리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죄악이다.
"7시에 태권도 가야 하죠.아침 먹고 9시에 논술 오죠.10시에 속셈 가죠.2시엔 엔아이이(NIE)가야죠. 영어 선생님 오죠.영어 선생님 가면 8시인데 밥 먹고 좀 쉬다가 자야죠.숙제할 시간이 언제 있어요?"
겨울 방학 때 글쓰기 과외에 나온 아이가,글은 안 쓰고 장난만 치다가 집으로 가려고 하기에,그러면 집에 가서 숙제로 글을 써 오라고 했더니,수첩을 꺼내어 들고 줄줄 읽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는 것이다.
이러니 아이들은 학교 교실에서나 학원에서 그저 멍하니 넋을 잃고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거나,아니면 스타크래프트 게임 얘기 판을 신나게 벌인다.
"아이들은 모이면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자기가 더 잘한다는 자랑과,저마다 게임 CD가 많다는 둥,서바이벌 할 때 어떤 총이 센가 그런 얘기뿐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기지도 만든다.
상대편과 싸워 이기면 굉장한 쾌감을 느낀단다. 지면 다시 더 강한 군대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어 또 한단다"(어느 과외 교사의 글)
교육부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도록 하고,또 무슨 영재학급이란 것을 만든다고 하더니,이번엔 헌법재판소에서 과외를 금지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자유를 빼앗는 위헌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와 학원과 부모들이 과외교육을 둘러싸고 와글와글한다.
대통령까지 걱정이 돼 관계장관에게 고액과외를 엄중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로 이 나라의 모든 어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그 깨끗하고 고운 마음의 세계를 지키고 키워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닦달하고 채찍질해서,장차 돈 잘 벌어 잘 먹고 잘 입고 기분좋게 살아가는(그 망하는)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를 짓밟아 없애는 무서운 폭군이 돼있다.
과외문제도 다만 돈 때문에 문제를 삼고있는 것이다.
돈 때문에!
urimalel@ 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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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아동문학가
<>저서 : "우리글 바로쓰기",동시모음집"일하는 아이들"등
"나는 어렸을 때 쇠에 녹이 슨 색을 녹색으로 알았다/그래서 자꾸만 갈색을 녹색이라고 불렀다/엄마가 녹색은 초록색이라고 해도/나는 갈색을 녹색으로 믿었다/아직도 그렇게 착각할 때가 있다"(97.3.16 5학년)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 같은데,나는 우선 여기서 쓴 말 몇 가지를 문제로 삼는 데서 이 시를 이해하고 싶다.
첫째,"녹색"과 "초록색"이란 말인데,사전엔 같은 말이라 하면서 풀빛 풀색 푸른색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녹색의 "녹"은 "푸를 녹"이라고 하는 한자로 된 말이다.
쉬운 우리말은 버리고 한자말을 쓰니 그만 녹슨 색으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이 아이는 잘못 알았다(착각했다)고 했지만,사실은 우리말에 대한 어린이다운 깨끗한 느낌을 잃지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것이다.
이 아이가 녹색이란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늘 헷갈리면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따지고 보면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말이 될수 없는 한자말을 쓰도록 강요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다음은 갈색인데,이것도 한자말이다.
나는 이 나이에 아직도 갈색이란 색이 머리에 퍼뜩 안 떠오른다.
그런데 이 아이는 갈색이 어떤 색인가를 알았던 모앙이다.
갈색이란 말에서 아주 다른 색이 연상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갈색이란 말도 안 쓰는 것이 좋다.
갈대밭에서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갈색을 갈대색이라고 알 테니까.
밤색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나.
셋째는 "착각한다"는 말인데,이것도 "잘못 안다.
잘못 생각한다"하면 된다.
넷째는 "불렀다"인데,여기서는 "했다"고 써야 옳다.
녹색아! 하고 불렀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니까.
왜 이렇게 이상한 말을 썼나?
그 까닭은 모든 어른들이 외국말 "따라 했다"를 "불렀다"로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쓰고 있는 말 몇 가지만을 살펴도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어려운 말로 어지럽히고 깔아뭉개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나면서부터 그 맑은 눈과 깨끗한 마음에 비친 모든 사물에 대한 부드러운 감성과 놀랄 만큼 올바른 직관을 가지고,우리 말로 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도무지 우리 말에 어울리지 않는 어설픈 한자말을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강요해서 그만 이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그 감수성과 재능을 애써 부정하고 착각했다면서 자기 세계를 짓밟아 버리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죄악이다.
"7시에 태권도 가야 하죠.아침 먹고 9시에 논술 오죠.10시에 속셈 가죠.2시엔 엔아이이(NIE)가야죠. 영어 선생님 오죠.영어 선생님 가면 8시인데 밥 먹고 좀 쉬다가 자야죠.숙제할 시간이 언제 있어요?"
겨울 방학 때 글쓰기 과외에 나온 아이가,글은 안 쓰고 장난만 치다가 집으로 가려고 하기에,그러면 집에 가서 숙제로 글을 써 오라고 했더니,수첩을 꺼내어 들고 줄줄 읽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는 것이다.
이러니 아이들은 학교 교실에서나 학원에서 그저 멍하니 넋을 잃고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거나,아니면 스타크래프트 게임 얘기 판을 신나게 벌인다.
"아이들은 모이면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자기가 더 잘한다는 자랑과,저마다 게임 CD가 많다는 둥,서바이벌 할 때 어떤 총이 센가 그런 얘기뿐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기지도 만든다.
상대편과 싸워 이기면 굉장한 쾌감을 느낀단다. 지면 다시 더 강한 군대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어 또 한단다"(어느 과외 교사의 글)
교육부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도록 하고,또 무슨 영재학급이란 것을 만든다고 하더니,이번엔 헌법재판소에서 과외를 금지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자유를 빼앗는 위헌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와 학원과 부모들이 과외교육을 둘러싸고 와글와글한다.
대통령까지 걱정이 돼 관계장관에게 고액과외를 엄중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로 이 나라의 모든 어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그 깨끗하고 고운 마음의 세계를 지키고 키워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닦달하고 채찍질해서,장차 돈 잘 벌어 잘 먹고 잘 입고 기분좋게 살아가는(그 망하는)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를 짓밟아 없애는 무서운 폭군이 돼있다.
과외문제도 다만 돈 때문에 문제를 삼고있는 것이다.
돈 때문에!
urimalel@ 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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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아동문학가
<>저서 : "우리글 바로쓰기",동시모음집"일하는 아이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