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집은 허름한 단칸방이지만 차는 페라리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잠도 페라리 안에서 잔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페라리가 집이다.

참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카 마니아는 그 심정을 안다.

내게도 꿈이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근사한 해변 도로를 따라 짜릿하게 질주하는 그 맛.

이젠 각고의 노력 끝에 여자 친구를 만나고 회사에서 먹고 잔 덕분에 탄탄한 벤처기업의 연구소장으로 나름대로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

꿈에 그리던 스포츠카도 올해안에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드라이빙 실력이다.

스포츠카는 그 차를 탈 자격이 있는 사람이 몰아야 한다는 신조 때문이다.

지난 1992년 2월에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경남 창원에서 쭉 뻗은 2차선 강변도로를 질주하다 1백20도 급커브를 만났다.

워낙 과속이었던 탓에 급제동하다 자동차가 빙글 돌면서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내 몸과 전봇대는 멀쩡했지만 애지중지하던 스쿠프 터보가 박살났다.

이때부터 드라이빙 기술과 레이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레이싱클럽 "예맥"을 우연히 PC통신에서 발견하고 6개월간 짬짬이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앉는 자세부터 스티어링휠 포지션, 안전 운전, 방어 운전, 코스에서 라인 잡는 방법, 힐앤토, 급제동법 등.

몽산포 해변가로 훈련 가면서 야간에 10여대의 차가 불을 밝히고 줄지어 그룹 드라이빙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논문 연구를 위해 용인에 있는 고등기술연구원에 1년반동안 다녔었다.

출퇴근길인 용인~백암간의 304번 지방도로는 드라이빙 기술을 익히는데 적합한 곳이었다.

특히 와우정사 고개에는 한계령과 비슷한 산악 코너가 연달아 있어 코너링 기술을 연마하기에는 그만이었다.

그러던중 1998년 봄 커브를 한계 속도로 돌아나가다 탈출지점에 있던 진흙에 미끄러져 15m를 날아 밭두렁에 처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안전장비 덕에 몸은 안다쳤지만 스쿠프 터보가 그 자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그 후 좀더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레이싱 관련 서적들을 구해 탐독했다.

또 카레이서 김재민의 인터넷 홈페이지(www.kimjm.com)에서 여러 기술을 접하기도 했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프로엑센트 TGR다.

레이싱 입문용 차다.

안전장비를 제외하고는 튜닝도 거의 하지 않은 상태다.

내년쯤 이 차를 타고 그토록 갈망해 왔던 레이싱에 참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