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1억원,상하이 올 로케이션,최초의 한.중 합작영화로 관심을 끌었던 "아나키스트"( Anarchists )가 29일 개봉된다.

이 영화는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상하이에서 일본을 상대로 테러를 일삼았던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을 다룬 이색 작품.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권력 지배없는 사회를 외치지만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하에서 테러활동에 주력했던 게 사실이다.

젊은 목숨을 바쳐 테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운명적인 삶을 60만평에 이르는 상하이 필름스튜디오에서 4개월에 걸쳐 촬영했다.

1924년 상하이.

경신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소년 상구(김인권)는 상하이 공개처형장에서 의열단원들에 의해 구조되면서 단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야기는 다섯명의 의열단 활동을 상구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허무주의적 인텔리겐차인 세르게이(장동건),냉철한 사상가 한명곤(김상중),낭만적 휴머니스트 이근(정준호),백정의 아들로 다혈질인 돌석(이범수).

이들은 프랑스 조계를 근거지로 의열단에 협력해 항일 테러활동에 가담하는 아나키스트들이다.

의열단 핵심 멤버인 "윤선생"의 지시에 따라 작전을 수행한다.

단원들은 거사 전에는 함께 사진을 찍고 거사 후에는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파티에 참석하곤 한다.

며칠 후 윤선생의 지시로 세르게이와 상구는 독립자금을 되찾아오기 위해 러시아인을 암살하러 모스크바로 향한다.

이들은 러시아인을 암살하고 독립자금을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세르게이가 금괴의 절반을 갖고 돌아오지 않자 세르게이를 죽이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세르게이는 일본인 고관을 죽이라는 명령을 혼자 수행하고 나오다 단원에 의해 사살당한다.

세르게이의 죽음을 계기로 단원들간에 내부 갈등이 빚어진다.

오직 임무수행에만 관심있는 한명곤과 세르게이의 죽음을 아파하는 이근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일본 경찰들의 추적으로 조직은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다섯명의 젊은 청년 아나키스트들의 혁명적인 모습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유영식 감독은 자신만의 명분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았던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특성이 요즘 젊은 세대와 비슷해 이들의 "영웅적인 측면"을 미화하는 데 주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나키스트=테러리스트"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아나키스트들의 한 면만 강조한 점은 아쉽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나키스트들은 화려한 옷에 파티장을 자주 찾는 일종의 "전문킬러"에 가깝다.

사상적 인간적 고뇌,인생에 대한 회의감 등 당시 조국을 잃은 아나키스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심적 방황을 다루는 데 너무 소홀히 한 감이 없지 않다.

무거운 영화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삽입한 코믹장면들도 전혀 자연스럽지 않아 눈에 거슬린다.

돌석과 상구의 장난기,상구와 사진관집 딸인 링링과의 연애장면등은 부자연의 연속이었다.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이범수 김인권등 출연진은 비교적 개성이 강한 배우들이다.

아나키스트들의 특성을 너무 단순화하다보니 이들의 연기력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면도 엿보인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홍콩배우 리밍이 부른 주제곡 "오늘이 마지막이기를"은 영화분위기와 썩 어울리는 감미로운 음악이다.

이성구 기자 sklee@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