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지휘자가 있지,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러시아 국립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인 박태영씨가 지난해 가을 뉴서울필하모닉 전임지휘자직을 수락하며 한 말이다.

명연주자(명지휘자)는 악기(오케스트라)를 탓하지 않는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그가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뉴서울필 정기연주회의 지휘봉을 잡았다.

러시아 스페셜리스트란 자신의 특징을 살린 첫 연주회여서 그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날의 레파토와는 근.현대 러시아 작곡가 곡만으로 꾸며졌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국민악파 5인중 한 사람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모음곡 "세헤라자드",코르사코프의 제자이자 현대 러시아음악의 선구자인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 그것.

러시아 음악사를 한번에 훑을 수 있고 교향악의 색채감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선곡이어서 연주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박태영씨는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과 시적인 낭만성을 모든 곡속에 담아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는 감정을 함부로 폭발시키지 않고 음을 하나씩 잡아내는 절제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두팔과 상체를 휘저으며 호쾌하게 오케스트라를 리드하면서도 악상을 유연하게 이어가는 그의 상상력이 돋보였다.

특히 마지막곡인 세헤라자드에서 보여준 각 악기군의 조화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은 "뉴서울필이 이렇게 달라졌나"란 객석의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오보에를 중심으로 한 목관파트가 제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날 감기로 컨디션이 안좋았던 객원악장 이활씨도 독주 바이올린 파트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옥의 티"였을까.

잘만 연주하면 초보 클래식애호가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은 아쉽게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박영민은 여성 연주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있고 다이내믹한 타건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하지만 3개 악장 내내 계속되는 빠른 패시지(경과구)에서 정확하고 고른 소리를 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고도의 테크닉과 강력하고 경쾌한 타건이 필요한 난곡이란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했다.

또 하나.

박태영씨의 절제된 곡해석과 넘치는 서정성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피아노 파트를 너무 강조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 장규호 기자 seinit@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