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베스트셀러 작가 S씨가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 왔다.

작가에게 습작기의 어려움이나 창작 습관 등에 대해 듣고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묻는,작가들이 "약장사"라고 일컫는 행사에 연사로 초청 받아온 것이었다.

학생들의 기대가 대단했던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첫 십여분 동안의 S씨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더듬거렸다.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가 하면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데 혼자 피식 웃다가 "재미없지요?"라고 거듭 물었다.

그가 본래 유창한 언변의 소유자는 아님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도 바짝바짝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그 어눌한 말씨조차도 신비롭게 보였는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상을 향한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지만 뒤쪽에서는 강연이 끝날 무렵 들릴 법한 의자 삐걱이는 소리,잔기침 소리들이 들려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처음 소설을 쓰던 시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말투는 힘을 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느리고 낮은 음성이었지만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공들여 발음했는데 그건 마치 그 단어를 막 가슴에서 끄집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가 얼마나 깊은 정성을 들이는지,그것이 얼마만큼의 고통인지 절로 알게 되는 몸짓이요,말씨였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나,글씨도 말씨처럼 느린가 싶어 가까이 가 본 나는 내심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이 책을 내밀면 그는 이름을 묻고 무어라 정답게 말을 건네고 그리고는 아름다운 봄이네요,좋은 시간 보내세요 등등 저마다 한마디씩 곁들여 사인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난생 처음 책을 내고 사인회를 하는 사람처럼 그는 너무나 진지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내 견해가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글을 쓰듯 온 마음으로 독자를 대하는 그는 몹시 아름다웠다.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그 마음, 그것이야말로 베스트 셀러를 넘어서는,베스트 작가를 향해 가는 자세임을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