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메이드 인 저팬' .. 배정자의 매국적인 삶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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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는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매국노도 만들어낸다.
개인의 삶은 거대한 역사의 한 조각이기에 "비굴한 생존"을 택한 사람역시
시대가 낳은 비극일 수 있다.
극단 고향이 동숭홀에서 공연중인 "메이드 인 저팬-배정자를 아시나요"
(김정숙 극본.심재찬 연출)도 이같은 관점에서 출발한다.
배정자(1870~1951)는 구한말 이토 히로부미의 꼭두각시로 나라 팔아먹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
빼어난 미모와 복잡한 남성편력으로 "조선의 마타하리"로 불리기도 했다.
본명이 분남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후 노비로,
관기로, 여승으로 전전했다.
15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의 추천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됐다.
이토의 밀정교육아래 "일본산 배정자"로 다시 태어난 그는 일제의 첩자노릇
을 하며 배족행위를 일삼았다.
극은 이러한 배정자의 삶을 단죄의 손가락질대신 시대적 생존논리로 바라
본다.
제나라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어린시절, 병든 어머니를 볼모로 역적질
을 강요하는 이토의 폭력, 망국의 조정과 대신들의 부패...
자신을 얽어맨 개인적, 사회적 올가미속에서 그는 생존의 방편으로 매국을
택한다.
작품은 그러나 "악인"에 대한 재조명이 자칫 미화로 흐르기 쉽다는 함정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친일행각보다 고종을 시해하라는 명령에 갈등하거나 연인의 죽음앞에
몸부림치는 인간적인 모습에 무게를 실어 "배정자"를 있게한 시대적 책임을
돌아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생존논리가 악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전제는 얼버무려지고 말았다.
배정자를 통해 오늘날의 매국까지 역설하겠다는 제작진의 뜻도 읽어내기
어려웠다.
1998년 "아!정정화"에서 애국여성으로 열연했던 원영애는 희대의 요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무대장치는 참신한 시도가 돋보였다.
일부 장면을 영화 "사무라이 픽션"을 연상케하는 막뒤의 그림자로 처리하고
옷형상의 오브제가 조정대신 엑스트라를 대신한 것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본관객을 위해 일본어 자막을 제공한 것도 살만하다.
단, 자막이 흐려 시력이 어지간히 좋지 않고서는 알아보기 힘든 점은 개선
해야 할 듯.
19일까지.
(02)766-8679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8일자 ).
개인의 삶은 거대한 역사의 한 조각이기에 "비굴한 생존"을 택한 사람역시
시대가 낳은 비극일 수 있다.
극단 고향이 동숭홀에서 공연중인 "메이드 인 저팬-배정자를 아시나요"
(김정숙 극본.심재찬 연출)도 이같은 관점에서 출발한다.
배정자(1870~1951)는 구한말 이토 히로부미의 꼭두각시로 나라 팔아먹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
빼어난 미모와 복잡한 남성편력으로 "조선의 마타하리"로 불리기도 했다.
본명이 분남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후 노비로,
관기로, 여승으로 전전했다.
15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의 추천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됐다.
이토의 밀정교육아래 "일본산 배정자"로 다시 태어난 그는 일제의 첩자노릇
을 하며 배족행위를 일삼았다.
극은 이러한 배정자의 삶을 단죄의 손가락질대신 시대적 생존논리로 바라
본다.
제나라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어린시절, 병든 어머니를 볼모로 역적질
을 강요하는 이토의 폭력, 망국의 조정과 대신들의 부패...
자신을 얽어맨 개인적, 사회적 올가미속에서 그는 생존의 방편으로 매국을
택한다.
작품은 그러나 "악인"에 대한 재조명이 자칫 미화로 흐르기 쉽다는 함정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친일행각보다 고종을 시해하라는 명령에 갈등하거나 연인의 죽음앞에
몸부림치는 인간적인 모습에 무게를 실어 "배정자"를 있게한 시대적 책임을
돌아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생존논리가 악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전제는 얼버무려지고 말았다.
배정자를 통해 오늘날의 매국까지 역설하겠다는 제작진의 뜻도 읽어내기
어려웠다.
1998년 "아!정정화"에서 애국여성으로 열연했던 원영애는 희대의 요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무대장치는 참신한 시도가 돋보였다.
일부 장면을 영화 "사무라이 픽션"을 연상케하는 막뒤의 그림자로 처리하고
옷형상의 오브제가 조정대신 엑스트라를 대신한 것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본관객을 위해 일본어 자막을 제공한 것도 살만하다.
단, 자막이 흐려 시력이 어지간히 좋지 않고서는 알아보기 힘든 점은 개선
해야 할 듯.
19일까지.
(02)766-8679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