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 / 환경도시공학 >

프로야구나 농구 선수들은 1년 동안의 실적이 통계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것을 기초로 매년 연봉계약을 한다.

하루하루의 경기가 모두 돈과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기 자체가 냉혹한 생존전쟁일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식의 연봉제가 확산되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능력과 노력의 정도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과가 다르고 대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장원리다.

이제 일반 회사는 물론 정부 산하기관,공직사회에까지 소위 "공짜밥은
안 된다"는 분위기다.

자본주의 사회의 잣대는 돈이다.

그리고 돈은 경쟁을 통해서 쟁취된다.

지금까지 연공서열에 따라 "철밥통"을 지켜오던 우리 사회에 연봉제는
보수와 직급체계를 확 바꿔 놓고 있다.

가령 내가 속한 교수사회에서도 연구논문이나 강의내용 연구비 수주실적
등이 낱낱이 평가된다.

사람 값을 매겨서 일렬로 세워 놓다 보니 돈에 끌려다니는 인생이 스스로
구차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또 고과에 신경을 쓰다보니 장기적인 안목의 저술보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연봉제는 확실히 교수사회에 있어 신선한 자극임에 틀림없다.

연봉제 도입 분위기의 틈새를 비집고, 최근 시중은행장이나 임원들의 연봉
고액화와 스톡옵션제가 추진돼 올 봄 주주총회의 주요 안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은행장 연봉이 이제 10억원대에 이르고 임원들도 3억원대가 될 것이라고
해 재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사외이사들마저 자기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는 것을 결정했다고 하니
지나친 "나눠 먹기"가 아닐까.

정부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살린 은행의 간부들이 스톡옵션으로 거부가
됐다는 얘기는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다.

지난 날 은행은 빚투성이에 쌓여서도 고임금을 선도해 왔다.

이제 일반회사로도 고액 연봉제나 스톡옵션이 확산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임원은 물론 중견 간부에게까지 스톡옵션을 확대한다고 한다.

스톡옵션은 인센티브의 방법이겠으나, 회사의 초창기나 재정적인 곤경으로
월급도 제대로 못 줄 때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경영책임자들의 거액 연봉은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AOL의 스티브 케이스 회장은 연봉이 1억달러가 넘는다.

한국에도 외국회사의 자회사 사장들의 연봉은 수십억원이나 된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CEO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봉제의 바람을 타고 "경영 귀족"들이 몸값 부풀리기에 나서거나
스톡옵션으로 분장을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생각해 보자.

미국은 개인주의에 의존해 왔으나 우리는 집단주의에 익숙해 왔다.

개인플레이보다 조직 내의 화음이 중요하다.

조직사회이므로 승급 (raise) 보다 승진 (promotion) 을 선호했다.

의사결정도 단계적인 결재과정을 거치며 책임을 공유해 왔다.

그래서 미국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많지만 우리는 조직의 가치를 더 존중했다

조직내 개인간의 경쟁은 지양하고, 공이 있다면 "우리"의 것이었다.

또 유교사상의 전통으로 자기의 노동을 돈으로 따지는 것을 금기시해 왔다.

우리는 봉급날이면 화장실로 들어가 남몰래 봉투를 뜯어보았다.

필자도 원고를 쓰면서 원고료를 따진 적이 없다.

책을 열권 넘게 내면서도 그 책이 한번도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따라서 개인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 연봉제는 "우리"라는 사회의 밑바닥
정서와는 다르다.

따라서 뿌리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증시 과열로 배금사상이 팽배해 있다.

저마다 돈 놓고 돈 먹기와 제몫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 틈새로 고위 경영자들의 연봉 인플레는 근로자에게 박탈감을 주고
위화감을 조장할 것이다.

아직 우리의 기업이나 은행은 고임금이나 고액연봉에 유혹받을 때는 아니다.

정부가 지나친 스톡옵션의 차익에 중과세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은 이같은
취지일 것이다.

IMF관리체제의 칼바람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밀려난 것이 언제
이던가.

양식있는 책임자는 스스로 보수를 낮추고 어려움을 헤쳐왔다.

지금도 내로라하는 벤처기업 사장의 연봉은 일반직원들 수준이다.

어깨를 맞대고 고통을 나누고 미래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가 많고 적은 것을 너무 가리지 말아라. 비록 현재 보수가 적고 대우가
빈약해도 그 일을 통해 성공의 문이 열리는 수가 많다"고 버트런드 러셀은
충고한 적이 있다.

나는 연봉제와 스톡옵션의 순수한 취지가 우리 사회에 연착륙하기를 바라지
만 그 뒤의 그늘을 경계한다.

< gyl@madang.ajo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