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라는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회사가
인터넷 사업에 진출한다면 소도 웃을 일입니다"

비철금속 업체인 A사의 P사장.

입을 열기가 무섭게 목청이 올라간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은 달아 오른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체념한 듯 금방 목소리가 잦아들고 눈가엔 잔 이슬이 맺힌다.

"요즘 정말 의욕이 없어요. 왜 기업을 하고 있는지 후회할 정돕니다.
40여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기름밥만 먹고 살아왔는데 사기꾼이라뇨.
너무 억울합니다"

P사장은 조용히 울분을 삼키면서 말을 잇는다.

"전화벨 소리에도 가슴이 울렁거려요. 일부 극성스런 주주들의 욕설 때문
입니다. 주가가 내리는 날이면 다짜고짜 육두문자가 귓전을 울립니다. 자칫
지병인 고혈압에다 화병까지 겹칠 지경입니다"

그의 하소연은 이어진다.

"사실 투자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이익은
늘어도 "굴뚝 산업"이란 이유만으로 주가가 "왕따"를 당하니까요. 투자자들의
손실감을 뭘로 보상해 줄지 그저 막막합니다. 주주들의 거센 항의를 당연한
충고라고 자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욕설이 아닙니다.
일부 주주들의 비뚤어진 행태지요"

"일부 주주들은 막무가냅니다. 인터넷 사업에 진출한다는 공시를 내라,
사실도 아닌데도 외자유치 협상을 벌인다고 흘려라, 요즘 잘 나가는
정보통신사업을 정관의 사업목적에 추가하라는 등 터무니없는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요"

"납 아연 등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회사가 왠 인터넷 사업입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 무시하니까 난립니다. 소액 주주를 모아 3월 주총에서 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느니, 검찰에 진정서를 넣어 있지도 않은 비리를 폭로하겠다
느니, 원청업체에 주주명의로 항의서를 전달해 납품을 끊어놓겠다고 어름장
입니다. 견디다 못해 코스닥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사업은 하지 마라, 굳이 한다면 제조업이 아닌 돈 되는 인터넷
이나 정보통신업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그의 씁쓸한 웃음에 갑자기 기자의 가슴은 답답해졌다.

P사장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기자도 언제 화병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탈선을 부추기는 일부 주주들의 비뚤어진 행동 때문에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이 외면받을까 우려된다.

< 김태철 벤처중기부 기자 synerg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