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BM) 특허 대란이 코앞에 닥쳐왔다.

지난해 미국과 일본의 인터넷 업체들은 한국 특허청에 36건의 전자상거래
BM 특허를 출원했다.

이는 1998년 이전 연간 10건 미만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것.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십명의 특허전문 변호사를 2~4개월간 한국에 보내
전자상거래 시장을 조사했다.

문제는 해외 선진업체들이 보유한 원천 BM 특허의 폭발력이다.

단순 기술이 아닌 사업 아이디어 자체에 권리를 주는 탓에 똑같은 기술이나
시스템을 쓰는 한국의 웹사이트를 모두 걸고 넘어질 수 있다.

원천 BM을 가진 해외 선진업체에 로열티를 주거나 서비스를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밀레니엄테크마의 강승일 사장은 "미국 인터넷 업체들이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한국을 점찍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이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BM 특허 추이 =BM 특허는 인터넷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선 1990년대 초반 인터넷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싹트면서 BM 특허
개발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BM 특허만을 연구하는 전문 개발센터들이
세워졌다.

이들이 쏟아내는 BM 특허는 전자상거래(EC)는 물론 금융 마케팅 광고 교육
오락 등 인터넷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 미쓰비시 히타치 등 대기업 주도로 전담팀
을 구성해 BM 특허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특허청은 폭주하는 BM 특허출원을 처리하기 위해 각각 1996년
과 97년 컴퓨터 관련 발명심사기준에 BM 특허를 포함시켰다.

한국의 경우 1996년 하반기부터 BM 특허가 간간이 출원되다 98년 미국의
특허분쟁이 알려지면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특허청은 98년 8월에야 컴퓨터 발명심사기준에 BM 특허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 선진국과 한국의 BM 심사기준 =미국의 경우 1998년 SFG와 SSB의 특허
분쟁을 계기로 BM 특허기준의 새 장이 열렸다.

당시 "공동출자한 펀드 자산을 하나로 관리하는 데이터처리시스템" 특허를
인정받은 SFG를 상대로 SSB가 낸 특허무효 확인소송에서 연방법원은 SFG의
손을 들어줬다.

하나의 수치를 다른 수치로 변환하는 발명이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자체도
유용한 결과를 제공한다면 특허권을 주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전통적인 특허 개념의 필수 요소인 "자연 법칙을 이용한 물리적
변환 요건"이 사실상 폐기됐다.

기술 중심의 특허 개념이 아이디어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에서도 최근 논란을 거듭한 끝에 아이디어 중심의 BM 특허를 내주기로
방침을 수정했다.

일본 특허청은 지난달 스미토모 은행이 출원한 "기업이 고객 입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조회시스템"의 특허등록을 허용키로 했다.

또 인터넷 활용기법과 전자상거래 규격 등 독창적인 비즈니스모델에
대해서도 특허를 내주기로 기본 입장을 정하고 법률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비즈니스모델 특허 허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온 일본도 미국 인터넷 업체들
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제도 정비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은 아이디어 중심의 BM 특허를 허용하고 있다.

기술 내용을 기반으로 인터넷은 물론 오프라인을 통한 마케팅과 영업 분야
까지 포괄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 특허청은 BM 특허에 대해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프로세스모델과 데이터모델 등 기술적 내용을 중심
으로 심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BM 특허의 후발주자인 한국 업체들을 간접적으로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본격화되는 BM 특허분쟁 =BM 특허 열풍은 전자상거래 원천 기술을 가진
선발업체와 이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후발업체간의 특허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8년 "SFG 대 SSB 사건" 이후 BM 특허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인터넷 역경매시스템 특허를 가진 미국 프라이스라인사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10여일 후 인터넷 서점업체인 아마존사는 미국 최대의 오프라인 서점업체인
반즈&노블사를 상대로 특허권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터진 두 사건은 BM 특허분쟁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일본에선 1997년 시티뱅크의 금융자동화시스템이 일본 은행들의 이의신청
으로 등록취소됐으나 시티뱅크의 반발로 현재 도쿄고등법원에 계류중이다.

<> 한국은 BM 특허의 안전지대인가 =특허청은 1998년 하반기부터 미국과
일본이 한국에 본격 출원한 BM 특허의 심사 및 등록이 올해 하반기부터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때부터 선진국 인터넷 업체와 한국 업체간의 특허전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천 BM 특허를 가진 선발업체에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변리업계의 한결같은 시각이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정은진 변리사는 "한국 특허청이 기술 중심의 BM 특허
심사기준을 무작정 고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번 빗장이 풀리면
국내 업체들은 엄청난 특허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내다봤다.

<> 대안은 없나 =인터넷 업계는 당장 미국과 일본의 BM 특허를 선진국
기준대로 인정할 경우 한국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들이 초토화될 것으로 전망
하고 있다.

카오스트레이드의 김웅범 사장은 "대형 웹사이트를 비롯해 한국 인터넷업체
가운데 고유한 BM 특허를 가진 곳이 거의 없다"며 "최악의 경우 한국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의 80~90%가 로열티를 물거나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선진국과 똑같은 BM 특허 심사기준을 섣불리 도입할 경우 오히려
한국 인터넷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대신 BM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인터넷 업체들이 공동으로 "BM 개발센터"를 설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선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는 물론 마케팅 영업 기획 등 각
분야별로 MBA 출신 전문가와 컨설턴트들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또 기업의 BM 개발을 전담하는 정보경영자(CIO)를 길러내게 된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 등이 내놓은 사업 아이디어에 프로세스모델과 데이터
모델을 덧붙여 선진국과 겨룰 수 있는 BM 특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울러 엔지니어 위주로 진행되는 특허청의 심사.심판업무와 특허법률사무소
의 변리업무에 MBA 출신자 등 경영과 마케팅 전문가를 대폭 아웃소싱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정한영 기자 chy@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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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 특허란 ]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BM 특허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과는 다소 다르다.

흔히 BM 특허라고 말하는 것들은 영업방식 발명으로 사업 아이디어나 경제
법칙 등 BM을 정보통신시스템과 결합한 것.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데이터 처리흐름을 보여주는 프로세스모델(작업공정)
과 데이터의 집합 및 속성을 나타내는 데이터모델(데이터베이스) 등 기술적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특허청 컴퓨터심사담당관실의 이은철 심사관은 "아이디어, 프로세스모델,
데이터모델 등 세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발명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며 "단순한 아이디어 자체는 결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