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줄서기, 이방저방 기웃거리기, 어쩌다 오른 고기반찬
먼저 먹기, 밤새워 술마시고 논쟁하기, 등기우편물 온 방 확인해 돈빌리기.

초라하고 꾀죄죄하지만 옆방친구가 안들어오면 무슨일인지 챙기고 아프면
서로 약 사다주고 누가 이성문제로 고민하면 함께 끙끙대는 정과 구수함이
있던 옛하숙집의 정경이다.

세상이 몽땅 변한 탓일까.

입학철 대학가에 재래식하숙집은 텅텅 비고 원룸, 그중에서도 고속
인터넷전용선이 깔린 사이버텔만 불티난다 한다.

화장실과 싱크대 붙박이장 등이 갖춰진 원룸이 처음 생긴 건 90년대초.

독신 직장인을 위해 강남에 등장한 뒤 90년대말 대학가로 급속히 확산됐다.

원룸의 크기는 보통 6~11평이지만 방 하나가 1~2평인 변형원룸도 많다.

고시텔은 방 하나가 2평미만으로 좁은데도 잡지와 컴퓨터 팩시밀리 복사기
등이 비치된 휴게실과 식당, 샤워장 등 공동공간이 있는데다 독립성이 보장돼
인기라는 소식이다.

학생들이 재래식하숙집을 기피하는건 무엇보다 혼자 지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게 일반론이다.

PC방이나 컴퓨터 앞에서 채팅과 게임을 하며 자란 N세대들은 주인아줌마와는
물론 자기들끼리도 만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아줌마가 싫어도 친구따라, 음식이 맛없어도 아줌마가 좋아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결국 재래식하숙집도 침대와 책상등 가구를 놔주고 가정적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 외국인과의 대화등을 내세워 하숙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다고 전해진다.

세월의 변화를 막을 길은 없다.

그렇더라도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선생의 회고록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에
나오는 하숙생과 주인할머니의 모습은 더불어 사는 세상의 따뜻함과 도리를
일깨운다.

"경방에 다닐 때 장충단공원 근처 연못에서 밤11시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귀가했더니 귀가 얼어서 딱딱해졌다. 하숙집할머니가 김칫국에 담그면 얼음이
빠진다며 동치미 한사발을 주어서 거기에 귀를 몇시간동안 담그고 있었더니
정말 얼음이 빠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