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 전 EBRD 총재 >

유럽연합(EU)은 오는 2020년까지 최소 35개국을 회원국으로 거느릴 것이다.

그때 아마도 EU는 전체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터키의 국경까지 닿게 된다.

이때 EU는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통합체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EU의 통합과 확장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EU는
정치적 정체성이 없는 단순한 단일시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대상황에 맞게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UN의 일부 기구가
그런 것처럼 EU도 비효율성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실 EU확장 문제는 미래의 EU를 건설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EU가 적절한 수의 회원국들로만 구성돼 있다면 회원국수의 확대에 따른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EU가 12개 회원국으로만 이루어졌을때 소수의견의 방해없이
회원국들간 합의에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원국 수가 15개를 넘어 20개에 육박하게 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역내 거주인구수만 7억명이 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변화 및 개혁이 따르지 않는 어떠한 확장도 결국엔
EU의 앞길에 마이너스가 되고 회원국들의 이해에도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때문에 EU는 먼저 개혁에 착수하고 다음에 확장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과 정책들을 제안한다.

우선 35개 회원국의 복수연합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시하는 것이다.

복수연합 (plural Union) 의 개념은 모든 회원국들로부터 정치 군사 경제적
자원의 사용권을 위탁받아 대외적인 도전에 공동 대항, 회원국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연합은 계급적이거나 피라미드식의 조직이 아닌 회원국 모두의 자율이
존중되는 다원적 조직이 돼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시엔 국민 한사람에게 한 표의 투표권이 있듯이 이 연합에서
는 당연히 한 국가당 한표의 권리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준비된" 확장에 대비해야 한다.

이 준비는 나라 대 나라의 기초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새로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나라들은 그들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 때에만 의결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유럽협의회에서 행해졌던 만장일치의 방식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많은 부문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일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EU내 일반업무협의회를 둘로 나눠 하나는 EU 운영만 전담토록 하고 다른
하나는 대외정책을 맡도록 업무를 분할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조직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선 현재 15개 회원국을 5개나 그 이상의 그룹으로
나누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료회의의 멤버수도 20개 이하로 제한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회원국 일부를 몇몇 그룹으로 묶어 한 나라가 대표를 맡으면
될 것이다.

대표국은 순환제로 일정기간만 맡고 다른 나라가 또 맡으면 된다.

점차 유럽 전체의 단일화를 위해서 유럽협의회와 유럽위원회(EC)를 하나로
통합해 EU와 합치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만한 작업을 위해선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보다 많이 회동을 해야 할
것이며 각국간 놓여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안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정리=김재창 기자 charm@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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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