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밤 발생한 서울 여의도 지하동공구 화재 사고는 국가의 기간정보
망인 금융전산망과 통신망을 사흘동안 마비시켰다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정전이나 단수 등으로 시민들을 단순히 불편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정보화
시대의 국가기능 자체를 작동불능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중요한 시설을 관리하는 주체 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재설비는 사실상 거의 갖추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난지 사흘이 되도록 화재원인 조차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합동점검에서 문제점을 확인하고도 전혀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
나기도 했다.

이에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예고된 관재"라고 정의한다.

"금융 및 통신대란"을 예방할 수 있는 원천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 문제점 =허술한 소방대책과 체계적인 안전관리 부족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였다는게 방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화재가 난 지하공동구는 관리의 사각지대였다.

지난 1994년 3월 발생한 종로5가 통신구 화재사고 이후 개정된 소방법에
따라 94년 7월20일 이전에 설치된 지하공동구에는 소방안전장치를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여의도 지하공동구는 지난 1978년 만들어져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채 방치돼 왔다.

15만4천V짜리 배전선로를 비롯 유선방송 케이블, 초고속 광통신망,
상수도관, 난방용 온수관 등이 화재에 무방비상태로 방치돼 왔다는 것이다.

손발이 맞지 않은 행정체계도 재해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현재 서울시내 지하공동구는 여의도를 비롯해 목동.개포.가락.상계공동구
등 5개 구역으로 총연장 31km에 이른다.

그런데도 공동구 박스구조물에 대한 관리책임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전력.통신.상수도.지역난방 등 시설은 각각의 수용기관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관리주체가 명확하지 못하다 보니 서로 "떠넘기기"식 관리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1996년과 1998년 시설관리공단과 관계기관이 서울시내 5개 지하
공동구에 대한 합동안전점검을 하고도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대책 =전문가들은 지하공동구가 좁고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곳곳에
소방호스를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스프링쿨러 등 연소방지설비도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994년 종로5가 지하통신구 화재와 1997년 잠실 아파트촌 지하공동구
화재가 최악의 통신마비 사태를 가져 왔듯이 지하공동구 화재는 대형화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지하공동구 안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경보를 하는 감식시스템을 설치
하고 유독가스가 쉽게 배출될 수 있도록 환기시설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선 및 통신 케이블을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재로 교체하거나 난연성
도료를 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방재연구소 김병효 소장은 "지하공동구 중간 중간에 방화벽과 방화문
으로 구획을 설정하고 불연재로 된 피복으로 내화전선을 쓰거나 콘크리트로
겉을 싸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화재원인 =전선 케이블 과부하로 인한 합선이나 누전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화재당시 공사를 하지 않았으며 방화 가능성도 없어
합선이나 누전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추정"일 뿐이다.

재해대책본부는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울경찰청,
서울소방방재본부 등 관계기관으로 감식조사반을 구성,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양준영 기자 tetriu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