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부수어
쪽배를 만듭니다
마지막 아름다운 기억 하나
떼내어 돛으로 답니다
거칠고 막막한 바다를
차라리 깃털처럼 가볍게 떠갑니다
텅 빈 쪽배가 슬픕니다만
그래도 저 끝까지 흔들리며 갑니다

나해철(1956~) 시집 "긴 사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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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말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이별의 뉘앙스
가 짙다.

가령 "마음"과 "아름다운 기억 하나" 앞에다 "사랑하던"이라는 말을 넣어서
읽어보자.

사랑하던 마음을 부수어 쪽배를 만들고 그 아름다운 기억을 떼내어 돛을
단 배를 저어 망망대해를 떠가다니, 이쯤되면 이별도 아름답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이 상처로 남지 않고 힘이 되는 것이리라.

이별의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맑은 시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