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와 나는 같다
늙어 게슴츠레해질 눈과 눈곱과
몽당 빗자루 같은 꼬리와

등에 잔뜩 인생을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과
절뚝거리는 마음과

무엇인가 하소연하는 듯
주인을 바라보는 눈초리와
깊은 체념과 젖어 있는 쓸쓸한 희망과

김광렬(1954~) 시집 "희미한 등불만 있으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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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쟘이 "주여, 내가 이 당나귀들과 함께 당신께 가도록
해 주소서"("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라고 노래했지만, 당나귀
는 순박한 성정 때문에 백석 같은 시인도 몹시 좋아한 짐승이다.

이 시에서 작자는 조금은 못나고 어리석고 비겁한 자신을 당나귀에 비유
하고 있다.

약삭 빠르지도 다부지지도 못한 작자의 착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