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부암동엔 이름난 중국집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중국집으로 알려진 하림각이다.

대지 9천2백평, 건평 4천6백평, 동시 수용인원 3천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하림각의 연간 매출액은 30억원.

웬만한 중소기업과 맞먹을 정도다.

규모도 규모지만 하림각은 대표이사 남상해씨(62)의 눈물겨운 성공스토리로
도 유명하다.

중국집 "뽀이"에서 세계 최대의 중국음식점 경영자가 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명진출판, 8천5백원).

어린시절 남씨에게 인생이란 실로 잔인한 것이었다.

하루 한끼를 때우기 힘든 지독한 가난.

못먹어 퉁퉁 부은채로 신음하던 어린 여동생은 그에게 "하얀 밥 한그릇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을 앞세워 두명의 형제가 차례로 숨졌다.

어머니는 자식이 굶어 죽은 날에도 남은 식구들을 거두어 먹이기 위해
엿광주리를 이고 장사를 나가야 했다.

자식들의 시신을 묻다 쓰러진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어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난으로 인한 형제들의 잇단 죽음은 열살이었던 남씨를 무작정 서울로
떠다 밀었다.

가슴에는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

돈되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해나가던 그에게 인생을 바꿀 전기가 찾아왔다.

어느날 명동 거리를 지나던 남씨는 허름한 중국집 문을 두드렸다.

몸집의 몇배나 되는 물지게를 열심히 져나르는 소년의 성실함은 중국인
주인의 눈에 들었다.

그의 배려로 야학에도 다니게 됐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남씨는 전문 요식인을 양성하는 국제관광공사에 들어가
중국조리과정을 수료했다.

워커힐 호텔 조리부장을 거쳐 1967년 드디어 "동승루"라는 이름으로
중국집을 낸다.

매일 새벽 시장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가장 좋은 재료를 사다쓰는 정성으로
그의 중국집은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났다.

이후 "신해루" "열빈" "다리원"으로 사업을 불려간 남씨는 1987년 "하림각"
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중국음식점을 열기에 이르렀다.

"인생에는 역전의 묘미가 있지요. 죽는한이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투박하지만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역전의 미학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