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의 주역이었던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비자금파문이 국제적인
스캔들로 번질 모양이다.

프랑스 국영석유회사의 동독석유회사 인수와 관련,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회사가 콜에게 8천5백만마르크(약 5백10억원)를
지급했다는 보도가 나오는등 이른바 콜게이트는 점점 추한 모양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바이츠반 대통령의 부패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잡고
경찰이 공식수사에 나섰으나 본인은 한사코 대통령직을 사임하지 않겠다고
선언, 복잡한 양상이다.

클린턴과 고어의 불법정치자금 모금논란으로 한동안 미국경제가 떠들썩했던
것도 불과 얼마전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국제적으로 반 부패라운드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하는 현상이라고도 하겠다.

4백76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66명의 공천
반대인사명단도 핵심이 부패연루자들이다.

40명이 부정부패와 관련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중에는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있고 검찰이 무혐의로
처리했던 경우도 없지않아 당사자들의 반발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정치인 사정에 항상 표적수사시비가 뒤따랐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선정기준에 대한 시비는 아마도 끝이 없을 지 모른다.

시민단체들의 공천반대인사 발표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다.

경실련발표 이후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사에서도 시민들의 절대다수가
시민단체들의 공천반대운동에 대해 지지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인 비리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무감각했던 유권자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것은 누가 뭐래도 확실하다.

그것은 결국 정치권의 도덕적 기준을 최소한 어느정도 끌어올리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할만 하다.

그러나 경제를 생각하는 시각에서 보면 부정적인 효과도 결코 간과할 정도가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내놓은 일련의 "명단"이 결과적으로 본격적인 선거분위기를
앞당기고 그래서 결국 과열을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런저런 정치권 상황으로 미루어 16대총선은 14대나 15대때보다 과열될
소지를 안고 있다.

이는 올해초까지 선관위에 적발된 사전선거운동 건수가 이미 14대나 15대
때의 전체 건수를 넘어선 것 만으로도 엿볼 수 있다.

노동계의 정치참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첫 선거고, 그래서 재계의 정치
활동선언이 나오기도 했던 정치권 외부상황까지 감안하면 과열우려는 더욱
두드러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 시민단체들이 실정법에 관계없이 낙선운동을 펴나가겠다고
나선 것은 그들의 본의와는 관계없이 더욱 걱정스러운 일면이 있다.

그 목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밟지않는 행위는 불법일
수밖에 없고, 그런 사례가 한번 용인되면 일파만파로 규율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과열된 선거분위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따지고 보면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중 직접적인 선거자금살포로 인한
것은 극히 미미하다.

시중에서는 50억원을 써야 당선될 것이라는 소리가 나돌고 있지만, 한
선거구에서 1백억원이 살포된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선거자금은 전국을 합쳐
2조5천억원 정도다.

금융구조조정에 64조원, 대우채환매를 앞둔 금융시장 안정에 36조원을
예상하는 경제규모에 비해 그렇게 엄청난 비중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분위기가 과열되면 경제정책 그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엄청난 간접비용이 들게 된다.

예컨대 주가를 시장상황에 맡기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고 생각해보자.

그 파장이 선거후에 두고두고 남을 것은 자명하다.

선거과열이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다.

각 당이 규칙을 지키면서 그 결과에 순응하겠다는 담담한 각오로 선거를
치르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가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할 일이다.

공명선거 감시활동 등 종전까지의 시민단체역할은 바로 그런 점에서 경제에
큰 보탬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총선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낙선운동과 함께 혼탁.과열방지운동을 펴나간다
고 생각해보자.

과연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정치발전을 겨냥한 시민운동은 공천부적격자 발표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판단할 근거자료를 제시한 만큼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 효과를 좀더 명확히 하기위해 낙선운동등 실정법을 무시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본의와는 달리 선거과열을 부추기고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우려가 크다.

이제 시민운동단체들이 할 일은 과열과 혼탁을 방지하면서 공명선거가
치러지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