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으로 어음제도를 폐지한다는 목표아래 1단계 조치로 올 상반기중에
"기업구매자금 대출제도"를 도입한다는 한국은행의 구상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현재의 어음제도가 신용거래를 촉진시키는 장점보다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심화와 이자비용 가중, 그리고 연쇄부도 위험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문에 어음결제 폐지는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으로서 수없이 논의돼
왔다.

멀리는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 가깝게는 외환위기 직후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부도로 쓰러질 때마다 어음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그동안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까닭은 낙후된 금융시장,
대기업위주의 거래관행, 외형팽창 지상주의 등의 요인들이 얽혀 오랜 세월
동안 관행으로 굳어져 온 탓이다.

게다가 지난해말 현재 상업어음 취급잔액이 17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음유통
규모도 엄청나 자칫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들만 피해를 보기 쉽다는 점도
정부가 함부로 손을 못댄 이유다.

이번에 한은이 도입하려는 제도는 구매기업이 거래은행에서 자금을 융자받아
물품대금을 어음대신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현재 몇몇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일부 은행과 계약을 맺고 시행중인 구매자금카드, 구매자금
결제시스템 등을 모든 대기업들에 확산시키자는 취지다.

중요한 대목은 어음제도 폐지가 원론적으로는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적으로는
말처럼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관계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선 이 제도가 시행되면 납품업체는 물품대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지만
대신 구매기업이 금융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점은 납품값을 깎으면 해결되겠지만 동일인 여신한도 문제는 예외로
인정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금결제에 따른 세원노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대상기업에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주고 부가가치세율도 조정돼야 한다고 본다.

이밖에 구매자금 취급실적을 총액한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고 신용보증기관
의 지원방안 등도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신용이 취약하거나 경영상태가 부실한 기업의 어음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당좌개설 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발행된 환어음을 결제하지 않는
구매기업에 대해서는 신용정보망에 등록해 신용평가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등 거래은행의 자율적인 노력도 어음제도를 폐지하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인터넷이 경제환경을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 시키고 있는 지금 적어도
어음결제 관행정도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