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켄 게놈과학연구센터(GSC)의 박홍석(39) 박사.

GSC 취재중 만난 그는 GSC에서 일하는 단 한사람의 한국인 박사다.

그는 미국 일본 유럽이 진행중인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핵심멤버로 참여
하고 있었다.

그가 맡은 분야는 시퀀싱(Sequencing)팀.

시퀀싱이란 염색체내 수많은 DNA 염기서열을 읽어낸(Mapping)후 1차로
그것을 분석해 내는 작업이다.

현재는 오는 2월말 완료를 목표로 21번 염색체의 막바지 시퀀싱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는 "21번 염색체의 구조가 밝혀지면 지난해 해독을 끝낸 22번 염색체보다
인간 질병 극복에 훨씬 중요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에서는 연구성과를 서로
먼저 싣기 위해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한 상태라고 한다.

박 박사는 논문이 완성되면 자신의 이름 석자도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박 박사가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지난 1991년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국립과학연구소에서
게놈분야를 맡아 일했다.

그러던중 1995년 한국에서도 게놈연구가 시작되자 고국에서 일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귀국해 생명공학연구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2년동안 그는 마음고생만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공동으로 게놈 프로젝트단을
구성해 연간 수억달러씩 쏟아붇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연구소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게놈사업단만 만들어 놓았지
제대로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게놈의 뜻조차 몰랐던 국회에서 사업예산을 번번히 퇴짜 놓았기 때문"
이라는게 박 박사의 얘기다.

결국 그는 "이대로 있다간 개인적으로 뒤처지겠다"는 위기감에 고국을
등지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97년부터 GSC에 합류했다.

박 박사는 GSC에서 일하면서 "현대과학은 결국 돈싸움"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수억원짜리 고가장비를 수십대씩 갖고 있는 연구소와 고작 몇대에 불과한
연구소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적인 예를 하나 들었다.

"며칠전 수천만원짜리 컴퓨터가 잡자기 고장이 나 새것을 신청했더니 바로
몇시간 후 교체해 주더군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의 GSC의 명성은 이처럼 연구를 위해 아끼지 않는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박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선별해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정책관리자
들의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 박사는 게놈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아 이 분야 연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게놈분석 이후의 포스트 게놈 연구에서는 한국의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염기를 분석해 내는 SNP 연구는 아직 미개척
영역이고 투자도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기회입니다"

박 박사는 "마지막 기회를 한국이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말했다.

< 사가미하라=정종태 기자 jtchu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