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완전히 제압한 질병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답은 생각밖으로 극히 초라하다.

천연두 단 하나뿐이다.

1980년 WHO는 1977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이후 환자가
없었다며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제너가 1798년 종두법을 개발한지 1백82년만의 개가였다.

우리나라 국회도 1993년 천연두를 제1종 법정전염병에서 제외했다.

그런 와중에 구 소련이 천연두를 생화학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연구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만약 그렇다면 천연두균조차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기는 어려운 상태다.

반면 의료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20세기말에는 새로운 질병들이 잇따라
인류를 엄습했다.

제3의 아프리카산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원숭이 두창(Monkeypox)"은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불치의 역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

1956년 원숭이 몸에서 발견된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면
고열과 발진에 시달리면서 피부에 부스럼이 생긴후 폐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1980년 발견된 에이즈를 비롯 에볼라 유행성출혈열 등도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전염병들이다.

고개를 숙였던 결핵과 콜레라 등 전염병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결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미국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에이즈와 함께 항생제에 대한 내성 증가 등이 원인이 돼 미국 뉴욕시의
경우 결핵균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핵균에 노출된 1백명중 30명은 치료약이 없어 목숨을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구 소련지역에 재등장한 디프테리아도 기존 항생제를 무력하게 만들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졌던 말라리아와 공수병 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얼룩무늬날개모기에 물렸을 때 전염되는 말라리아는 한반도에서
사라진지 12년만인 1992년 재출현한 이후 급속도로 확산됐다.

98년에는 3천9백여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국내에서 발생했다.

공수병도 1984년 이후 15년만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파주에서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린 사람이 공수병에
걸렸다.

이에따라 국립보건원은 내년부터 신종전염병을 제4종 법정전염병으로 집중
관리키로 했다.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전염병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페니실린에 무력했던 포도상구균 등이 이제는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무서운 균이 됐다.

지난해 7월말 일본 도쿄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입원중이던 환자 13명이
갑자기 38도 이상의 고열증세를 보이다 5명이 숨졌다.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대부분인 이들 환자의 분비물에서는 내성을 지닌
슈퍼세라티아균이 발견됐다.

세라티아균은 장에 주로 사는 구균으로 10여년전만해도 무해한 균으로
여겨졌으나 항생제의 다량투여로 성질이 바뀌면서 위협적인 존재로 변했다.

지난 80년동안 인류가 항생제를 남용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