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금융감독위원회가 "경영 부적격자"로 판정해 해임 권고한 모증권사의
전임사장을 해당그룹이 계열 건설사 부회장으로 선임한 일이 있었다.
이에대해 금감위는 문제가 있는 인사이므로 경위를 조사하고, 해당
증권사에 대한 특별감리를 벌여 부실책임 관련 경영진을 추가 고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당국의 의지가 반영됐는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임원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부로부터 부실경영 책임자로 지목되어 해임된 임원을 다시 계열사의
임원으로 선임했던 해당그룹의 조치가 적절치 않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무리 임용권을 갖고 있는 민간기업의 대주주라 하더라도 사회통념에 맞는
인사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해임 권고를 받아 해임한 임원을 즉시 계열기업의
임원으로 선임했던 인사는 일반인의 감성상 수용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마치 대주주에게 충성하면 아무리 큰 잘못을 범해도 끝까지 책임져 주던
과거의 잘못된 기업문화의 일단을 보았던 듯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해당그룹은 일단 여론의 지적을 받아 마땅했었다 여겨진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우려스러운 일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금감위의 반응
이다.
해당 건설사는 증권사와는 엄연히 다른 회사다.
그 임원인사는 전적으로 해당기업 주주들의 권한이다.
또 해당 건설회사는 금감위 감독대상 금융기관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법적 근거로 경위를 조사하고,또 해당 증권사에 대해
특별감리까지 한다는 것인가.
당국의 "권위를 거스르는 행위"이니 불쾌하다는, 소위 "괘씸죄 차원"의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 아직도 우리 금융당국이 과거 관치금융시절의 의식에서
별로 변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막강한 공권력을 가진 정부기관의 언행은 항상 신중해야하고 철저히 법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한 사태가 있다 하더라도 법적 근거없이 움직여서는
안된다.
정부기관이 이같은 원칙을 무시하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여론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할 때 "법치"가 아닌 "인치"가 시작된다.
우리는 과거 수십년간 이어져 온 "인치"행정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을 놓고 볼 때 해당 건설사의 임원인사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금융당국이 이에 관여하거나 조사할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 인사의 문제점이나 적정성을 지적하는 역할은 여론의 몫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명백한
"월권 행위"였다.
새천년에는 제발 공직자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법치의식이
높아졌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 예측가능성있고 합리적인 법치사회로 성숙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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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