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맞아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경제블록 형성 가능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3국간 지역 경제협력체 설립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이론적으로만 거론돼 왔던 한.중.일 지역
경제협력체가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말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일 3국간 단일 경제권 구축을 위한 움직임은 점차 활발해져가고 있다.

3개국 정상은 마닐라 정상회담에서 지역 경제협력체 구축을 위한 제1보를
내디뎠다.

각국의 연구기관을 통해 통상 금융 정보통신 에너지 환경 등 10개 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키로 합의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첫 공동 연구과제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에 따른
3국의 이익극대화 방안을 선정해 실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택했다.

3국간의 합의는 일단 10개 분야를 공동 연구한다는 선에서 그쳤지만 이번
과제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3국간 협력체제는 더욱 긴밀한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중.일 3국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모두가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얼마전 닥쳤던 외환위기의 여파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굴욕을 겪었다.

일본과 중국은 비록 직접적인 외환위기를 당하기는 않았지만 아시아
금융시장이 휘청댄 영향으로 불황을 겪어야만 했다.

3국은 모두 나름대로의 경제구조와 산업구조에 문제점을 갖고 있으며 3국간
협력을 통해 이중 상당부분을 해소 내지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중.일간 경협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3국간 경제블럭이 형성될
경우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며 중국은 세계 1위의 인구대국이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에 해당하는 경제 발전단계와 산업구조를 갖고
있고 무엇보다 우수한 두뇌들이 즐비하다.

따라서 3국간 협력은 거의 무한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3국을 하나의 경제블록으로 가정해 다른 경제블록과 비교해 보면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3국의 인구를 합하면 14억2천만명이 넘는다.

이는 전 세계인구의 약 28%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럽연합(EU) 인구(3억2천4백
만명)의 약 4.4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회원국 인구(3억9천4백만명)의
3.6배에 달한다.

98년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할 때 3국을 합한 경제규모는 5조5백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총생산의 약 18%에 이르는 규모다.

NAFTA의 9조5천억달러, EU의 8조3천억달러에 비해서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 간격은 조만간 크게 좁혀질 전망이다.

특히 향후 5년내로 3개국의 경제규모 합계는 8조달러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 IMF체제를 실질적으로 탈피하면서 경제가 정상을 찾아가고 있으며
일본 경제도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게다가 중국경제도 WTO 가입이 확정될 경우 지금보다 한단계 도약할 것이
유력시된다.

그러나 3국간 경협전망이 꼭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는데다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침략했던 뼈아픈 과거사에 대한 정리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못한 상태다.

중국은 일본과 미국간 방위협력 체제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중일 3국의 결속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비록 경제적인 결속이라 하더라도 3국의 통합은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 북한간의 미묘한 3각관계 역시 본격적인 경협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 김선태 기자 orc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