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에는 예부터 호랑이가 많았다.

사람을 해치는 호환도 잦았다.

하지만 건국신화에도 나오는 깊은 인연때문인지 한민족은 이 두려운 맹수를
결코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산군자 산령 산중영웅으로 부르며 깍듯이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거나 부적으로 만들어 붙이면 호랑이의
재앙과 병을 막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복의 흉배나 민화의 호랑이 그림은 부귀 장수 다남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한민족의 생활속으로까지 파고 든 호랑이에 대한 전설이나 신화는
다채롭고 수가 많다.

그런 한국 호랑이 이야기들이 종합돼 극치에 이른 것이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이 아닌가 싶다.

"호랑이는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기가 있으면서도 싸움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기가 그야말로 대적할 자가 없다"

연암의 이런 호랑이 평가에는 한민족 본래의 선하고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때로는 정의를 위해 용맹스러운 심성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많던 한국호랑이가 1922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46년 평북 초산에서
각각 한마리씩 잡힌 것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멸종되고 말았다.

새천년 새날이 열린 오늘 0시 임진각에서 세계87개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상영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호랑이는 살아 있다"는 오랫만에 한국인들이
지난 과거를 내적으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동.서양이나 남북간의 갈등을 화해 평화로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
한민족이 세계속에 웅비하자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작품에 등장시킨 호랑이는 한민족의 내면을 닮은 한국호랑이였다.

지난 1세기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호랑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앞선다.

''호랑이가 아니라 한민족이 살아있다''는 작가의 다그침이 21세기를 막
출발한 우리 어깨를 더 짓누르는 것만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