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30일 국가공인시험인 보험중개인시험 채점이 엉터리였다고
실토했다.

70명의 합격자는 불합격자가 되고 71명의 불합격자는 합격자로 둔갑했다.

지금까지 없던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답안지를 읽는 기계가 낡아 일부 데이터를 읽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관계자들은 해명했다.

과연 그럴까.

무엇보다 채점을 기계에만 맡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기계에 결함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답안지 몇개는 수작업으로 채점해 기계로
채점한 것과 비교해 봐야 했다.

공신력이 생명인 기관으로서 번거롭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했다.

지난 27일 불합격자 3명이 의문을 제기해 잘못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대목도
이상하다.

합격자 발표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이 22일 발표된 명단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었겠는가.

수십명의 불합격 처리자가 채점결과에 의심을 품을 수 있는 상황에서 5일이
지난 27일에야 겨우 3명이 의문을 제기해 채점을 다시 해봤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금감원이 민원을 묵살했다가 항의하는 이들이 늘자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섰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채점기계가 수명이 다 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예산이 없어 새 기계를
구입하지 못해 낡은 기계를 계속 썼다는 금감원의 해명도 무책임한 얘기다.

미덥지 못한 기계라면 손으로 채점하거나 채점을 여러 차례 해보는 등
오류를 막기위한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손해사정인 등 금감원이 주관하는 다른 시험에선 그런 잘못이 없었다는
주장도 믿기 어렵게 됐다.

작년에는 공인회계사시험 응시자는 정답에 이의를 제기하자 감독기관이
자신을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그 때 출제 채점 사후관리 등 전과정을 정밀 점검했다면 이런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금감원은 그동안 남의 잘못을 밝혀내고 문책했다.

수많은 금융기관 사람들이 금감원의 조치에 운명을 바꿔야 했다.

의사와 판사가 사람의 물리적 생명을 다룬다면 금감원은 사회적 생명과
운명을 다룬 것이다.

그런 금감원이 맡은 일에 신중하고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남의 잘못만
탓하는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문제점을 파헤쳐 같은 사고를 막으려 하지 않고 단순한 기계의 실수라고
축소하는 것은 개혁주도기관답지 않은 태도다.

< 허귀식 경제부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