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서울 외환시장이 크게 출렁거렸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급등락을 거듭했고 외환거래량은 이상할
정도로 폭증했다.

소강상태를 보일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는 미국 일본 등지의 선진국 외환시장이 "개점휴업" 상태였던 것과 극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Y2K(컴퓨터 2000년 연도인식 오류) 문제로 인해
외환거래를 극히 꺼렸다.

연말에 거래를 하게되면 내년초에 결제를 해야 한다.

그러나 Y2K 문제가 현실화되면 결제 자체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물론 그 가능성은 현저히 희박한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외국계 은행은 1백% 안전하지 않은 위험에는 몸조심을 했다.

일부 외국계은행 본점은 한국에 있는 지점들에 이번주부터 아예 거래를
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려 보냈다.

90여개 되는 외환시장 참여자중 상당수 외국계 은행들이 빠졌기 때문에
거래량은 줄어드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거래량은 이상 급증했다.

11월중 하루평균 17억달러에 불과하던 외환거래량은 28일 20억달러, 29일
23억달러로 많아졌다.

국내 은행들이 부실외화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겠다며 대규모로
달러화 매수주문을 냈기 때문이다.

해외점포의 손실금을 보전하기 위한 달러매입도 생겼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목적으로 이번주
들어서만 10억달러 이상을 사들였다.

이 탓에 1천1백30원대 초반에서 맴돌던 원화가치는 28일과 29일 한때
1천1백50원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원화가치가 이처럼 떨어지자 휴가중이던 일부 해외투기 세력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NDF(차액결제선물환)
거래를 하는 투자은행들은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3억5천만달러 정도를
팔아치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Y2K 문제로 거래를 자제했지만 달러당
1천1백40-1천1백50원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NDF 투기세력의 달러화 매도에 더해 30일에는 국내 기업들과 은행들까지
달러화를 팔아 치우는데 열중했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는 장중한때 1천1백31원70전까지 치솟기도 했다.

은행들의 경우 부실외화채권 정산과 관련, 성업공사로부터 달러화를 받은
데다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거래행태에 대해 외환당국 관계자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며 "Y2K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안전불감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은행 딜러들은 색다른 평가를 내렸다.

최근 며칠간의 외환시장 거래동향을 보면 내년초 원화가치가 어떻게
움직일지 방향이 보인다는게 이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스탠더드 앤드 차터드 은행 양호선 차장은 "내년초 외환시장이 열리자마자
외국인들의 달러화 매도공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상반기중 1천1백원
을 전후해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 최정혁 차장은 "내년 2월중 투신사 환매사태가 생기지 않는다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며 "이 경우 달러당 1천원대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