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기관이 부실기업 정리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회생가능성이 극히 낮은데도 화의 법정관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같은
안전지대를 활용해 연명하고 있는 기업들을 솎아내자는 취지다.

그동안에는 부실이 한꺼번에 노출될 경우 생길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종의 피난처에 들어간 기업들을 철저히 해부하지 않았으나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을 일단락짓는 상황에선 더이상 정리작업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법정관리나 화의기업은 내년 상반기까지 생사가 정해진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부터 두달이상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은행연합회에서 78개 화의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평가작업을 벌였다.

삼일회계법인이 제시한 두 가지 평가모델과 최근 3년간의 재무제표 등이
활용됐다.

그 결과 가장 낮은 등급인 불량 6개사와 미흡 31개 등 총 37개사에 대해선
퇴출판정이 내려졌다.

금감원은 평가결과를 법원과 금융기관에 통보했다.

회생가능성이 낮은 37개사는 퇴출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구체적인 퇴출대상기업 명단은 각종 부작용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다.

이같은 평가대상에서 제외된 64대이하 그룹사 중소기업중 화의나 법정관리
를 신청한 곳, 앞으로 신청할 곳에 대해선 각 금융기관이 갱생가능성을 따져
신속히 대처토록 했다.

관계자는 "썩은 사과는 빨리 솎아내야 다른 사과가 썩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기관들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식의 공익적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해 이미 공익적 판단에 의해 예외적으로 화의 법정
관리에 동의할 수도록 한 현행 내규를 모두 삭제토록 지시했다.

공익적 판단은 법원의 몫이지 금융기관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화의 법정관리제를 이용해 부실을 은폐하거나 경영권을 계속 지켜
보려는 기업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워크아웃기업도 회생가능성이 낮은 곳은 퇴출결정이 내려진다.

2차 채무조정을 실시했어도 계속 비틀거리거나 빚을 모두 깎아 줘도 적자를
내는 기업이라면 더 이상 존속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청산할 때의 가치가 계속 존속시켰을 때의 가치보다
크다면 굳이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12개 대우 워크아웃 기업에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이 관계자는 "빚을 깎아준 대우계열사가 계속 적자를 낸다면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기업중 퇴출대상을 가리는 작업도 내년 상반기중 대충 마무리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이와함께 현재 정상인 기업중에서도 부실위험이 커지고 있는 곳은
워크아웃에 넣어 채무조정을 신속히 단행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5~6개 안팎의 기업이 현재 워크아웃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부실기업 솎아내기를 일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기관들이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늘 부실기업을 가려내 신속히
정리하는 일을 체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화의나 법정관리 기업에 대해선 법원이 최종적으로 갱생가능성을
판단하지만 금융기관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당국의
생각이다.

금감원은 해당기업의 로비를 받거나 부실발생에 따른 책임추궁이 두려워
부실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내년부터는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실기업 판정을 잘못해 금융기관에 더 많은 부실을 안겨줄 경우 이에따른
책임도 철저히 추궁할 방침이다.

< 허귀식 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