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라운드'' 결렬 원했나 ]

뉴라운드에는 1백35개국이 참여하지만 사실상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주도한다.

싱가포르 캐나다 한국 등 20여개 나라들이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미국은 "시장과 국제정치적인 파워" 둘다를 가진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시애틀 회의가 미국의 국내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결렬됐다는 해석이
이래서 나온다.

왜 미국은 시애틀 회의에서 합의라는 모양새보다는 결렬쪽을 선택했을까.

미국의 의도는 앞으로 뉴라운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클린턴 대통령은 시애틀 회의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벌경제체제"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일단 좌절됐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시애틀 회의의 실패는 클린턴 행정부에 상처를 줬지만
미국의 국내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 2일 시애틀 포시즌 호텔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근로조건과 환경문제가
교역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역설하자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그러나 미국의 AFL-CIO를 비롯한 노조지도자들은 대통령의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미국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글로벌경제의
교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노동과 환경조건"을 교역과 연계시키기로
작심한 것 같다.

시애틀 회의의 좌절로 가장 득을 본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유력시
되는 앨 고어 부통령이라는 미국현지 언론들의 분석이 이런 맥락에서 설득력
을 갖는다.

워싱턴 포스트는 "클린턴은 임기중에 전세계적으로 관세를 낮춰 글로벌
경제체제가 진일보시키려 하지만 고어 부통령이 차기대통령으로 후계자가
되는 것을 더욱 염원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글로벌체제의 확산과 노동과 환경문제, 보통사람들의 경제적인
이익간에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미국 민주당 진영도 갈등을 겪고 있고 이것이 시애틀 회의의
결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선차이 때문에 미국의회는 클린턴행정부가 뉴라운드를 빨리 추진할
수 있도록 권한(fast-track authority)을 주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민주당 진영은 중국의 문을 더 열어 미국기업들의 중국진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승인을 놓고서도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 노조는 중국의 값싼 상품이 미국시장에 범람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진출에 급피치를 올리는 대기업과 노조의 반중국적인
시각, 시에라그룹 같은 힘있는 환경단체들의 압력 사이에서 좌고우면하고
있다.

이런 갈등은 대통령선거가 끝날때까지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AFL-CIO의 존 스위니 의장은 시애틀 회의 결렬직후 CBS방송과의 특집인터뷰
에서 "나쁜 협상보다는 결렬이 낫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윌리엄 데일리 미국 상무장관도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밀레니엄통상과 글로벌경제를 주도할 미국이 국내정치적인 문제로 휘청대고
있는 동안 뉴라운드의 조기출범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 이동우 기자 leed@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