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간여행 (하)] 유럽경제 통합 .. 유럽 주춧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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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단일통화가 출범한지 1년이 다 되고 있다.
유로화 가치는 출발초기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단일통화 실험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하나의 유럽'', 즉 단일의 경제/정치 기구를 가진 유럽합중국으로
가는 경제통합의 첫 단추가 제대로 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럽은 어떻게 통합의 길은 준비해 왔는가.
그 장도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47년 유럽재건을 위한 "마셜플랜"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서유럽
경제기구(OEEC)가 창설됐다.
유럽 자체의 힘으로 통합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4년후였다.
"유럽통합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스 외교관 장 모네와 초대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로베르 슈망이 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했다.
ECSC는 2차대전후 독일이 다시 전쟁야욕을 꿈꾸지 못하도록 석탄과 철의
사용을 유럽 전체가 공동관리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유럽내 첫 초국가 기구
였다.
프랑스 주도로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만 가입했으며 이후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57년 5월 ECSC 가입 6개국은 ECSC를 확대키로 했다.
이들은 유럽공동시장을 창출하고 각국 사회정책을 조화시킨다는 목표아래
로마조약을 체결,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시켰다.
EEC의 출범과 함께 유럽인들이 비로소 유럽통합의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해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을 위해 유럽핵에너지공동체(EURATOM)도
출범, 유럽은 경제.정치적 통합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10년후 EEC와 ECSC, EURATOM 3개 기구는 유럽공동체(EC)로 통합
된다.
유럽 각국이 2차대전후 처음으로 책임있는 국제기구를 만들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다.
70년에서 93년까지는 단일시장을 위한 힘찬 도약의 시기다.
룩셈부르크의 총리였던 피에르 베르너는 70년 최초로 유럽 단일통화의
밑그림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3단계 화폐통합안"의 골자는 <>자본이동의 자유화 <>환율고정
<>단일화폐로의 대체였다.
이같은 구상은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채택한 유럽경제통화동맹(EMU)
의 초안으로 자리잡았다.
80년에는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로이 젠킨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함께 단일통화를 정식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후 독일 통일의 격변기를 거쳐 92년 2월7일 드디어 유럽 정상들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 모여 경제.통화 통합을 위한 일정을 담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
당시 역사가들은 이를두고 로마제국과 오스만터키, 히틀러가 실패했던
유럽통일 시도가 다시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일정에 따라 93년 1월1일 유럽 단일통합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인력의 국가간 교역에 관세가 사라지고 모든 국경
검사가 폐지됐다.
이후 98년 6월1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공식 설립되고 마침내 올해 1월1일
유럽 11개국은 유럽단일통화인 "유로(Euro)"를 도입, EMU의 돛을 올렸다.
단일화폐 유로는 2001년 12월31일까지 금융기관간 거래에만 사용된다.
이어 2002년 3월부터는 마르크화나 프랑화 등 개별국가의 모든 화폐가
사라지고 유로화가 유일한 법적 공식화폐로 통용된다.
원래는 2002년7월부터 유로화를 유일한 화페로 쓰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유로화 도입 11개국(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개별통화와 유로화를 함께 사용하는 "과도기"를 당초의 2002년 1~6월
까지에서 2002년 1~2월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 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
유로화 가치는 출발초기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단일통화 실험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하나의 유럽'', 즉 단일의 경제/정치 기구를 가진 유럽합중국으로
가는 경제통합의 첫 단추가 제대로 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럽은 어떻게 통합의 길은 준비해 왔는가.
그 장도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47년 유럽재건을 위한 "마셜플랜"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서유럽
경제기구(OEEC)가 창설됐다.
유럽 자체의 힘으로 통합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4년후였다.
"유럽통합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스 외교관 장 모네와 초대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로베르 슈망이 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했다.
ECSC는 2차대전후 독일이 다시 전쟁야욕을 꿈꾸지 못하도록 석탄과 철의
사용을 유럽 전체가 공동관리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유럽내 첫 초국가 기구
였다.
프랑스 주도로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만 가입했으며 이후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57년 5월 ECSC 가입 6개국은 ECSC를 확대키로 했다.
이들은 유럽공동시장을 창출하고 각국 사회정책을 조화시킨다는 목표아래
로마조약을 체결,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시켰다.
EEC의 출범과 함께 유럽인들이 비로소 유럽통합의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해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을 위해 유럽핵에너지공동체(EURATOM)도
출범, 유럽은 경제.정치적 통합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10년후 EEC와 ECSC, EURATOM 3개 기구는 유럽공동체(EC)로 통합
된다.
유럽 각국이 2차대전후 처음으로 책임있는 국제기구를 만들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다.
70년에서 93년까지는 단일시장을 위한 힘찬 도약의 시기다.
룩셈부르크의 총리였던 피에르 베르너는 70년 최초로 유럽 단일통화의
밑그림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3단계 화폐통합안"의 골자는 <>자본이동의 자유화 <>환율고정
<>단일화폐로의 대체였다.
이같은 구상은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채택한 유럽경제통화동맹(EMU)
의 초안으로 자리잡았다.
80년에는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로이 젠킨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함께 단일통화를 정식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후 독일 통일의 격변기를 거쳐 92년 2월7일 드디어 유럽 정상들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 모여 경제.통화 통합을 위한 일정을 담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
당시 역사가들은 이를두고 로마제국과 오스만터키, 히틀러가 실패했던
유럽통일 시도가 다시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일정에 따라 93년 1월1일 유럽 단일통합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인력의 국가간 교역에 관세가 사라지고 모든 국경
검사가 폐지됐다.
이후 98년 6월1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공식 설립되고 마침내 올해 1월1일
유럽 11개국은 유럽단일통화인 "유로(Euro)"를 도입, EMU의 돛을 올렸다.
단일화폐 유로는 2001년 12월31일까지 금융기관간 거래에만 사용된다.
이어 2002년 3월부터는 마르크화나 프랑화 등 개별국가의 모든 화폐가
사라지고 유로화가 유일한 법적 공식화폐로 통용된다.
원래는 2002년7월부터 유로화를 유일한 화페로 쓰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유로화 도입 11개국(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개별통화와 유로화를 함께 사용하는 "과도기"를 당초의 2002년 1~6월
까지에서 2002년 1~2월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 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